길따라절따라

[26-08] 충청과 전라의 삼색도량

6월 한 달을 건너 뛴 7월의 길따라절따라. 증심사 주지 중현스님과 함께 떠나는 이번 답사에는 29명의 답사객이 참여했습니다. 7월12일, 유난히 이글거리는 한여름의 태양을 머리에 이고, 충청과 전라의 삼색 도량을 거닐었습니다.

도난의 수난을 이겨내고 기적처럼 돌아온 당진 영탑사의 금동불, 머나먼 타국 땅에 다시 돌려보내야만 했던 비애를 담은 부석사 관음보살님, 그리고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잠들어 있다가 모습을 드러낸 국립익산박물관의 백제 사리장엄구까지.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부처님들 만난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환수의 기적, 당진 영탑사

첫 답사지인 영탑사는 어쩐지 생소한 이름입니다. 기대감을 안고 당도한 사찰. 아담하고 아기자기하게 정돈되어 있습니다.

천도재가 봉행되고 있는 대웅전을 지나쳐 산비탈로 발걸음을 옮기자, 우뚝 솟은 바위 위에 세워진 7층석탑이 답사단을 맞이합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암반 위에 이 시대 저 시대의 탑들이 묘하게 섞여 얹힌 듯 다소 불균형한 모습이 보이지만, 이 자리가 절에서 가장 기운 좋은 명당자리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탑 아래 유리광전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유리광전의 주불인 약사여래마애불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길고 큼직한 눈과 코, 장난기 어린 서투른 미소가 친근한 것이, 민초들의 애환을 어루만져 주던 고려 시대 지방 불상의 해학적인 미감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새 건물 느낌이 물씬 나는 비로전에는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 금동비로자나불삼존좌상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중앙의 본존불과 양쪽의 협시보살님이 앉은 좌대가 연꽃 줄기로 연결되어 있는 모습은 전에 없이 독특하고 아름다운 형상입니다.

이 아담하고 고아한 불상은 두 차례 도난당했다가 기적적으로 환수된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유리창 너머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사연이지요. 

반출의 비애, 서산 부석사

흔히 ‘부석사’라고 하면 경북 영주 부석사를 떠올리는데, 이곳 서산에도 의상대사 창건설을 공유하는 쌍둥이 절 부석사가 있습니다. 일본 대마도 관음사와 소유권 다툼을 빚어온 ‘부석사 관음보살상’으로 유명합니다. 

일주문에서부터 약 500미터. 수국이 장엄한 고즈넉한 산길을 걸어 도량에 당도합니다. 금강문 안의 두 금강역사는 타 사찰의 험상궂고 부리부리한 모습과 달리 익살스러움을 자아냅니다. 방망이를 든 도깨비가 역사의 자리를 든든하게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량에 들어서자 묵직한 필력이 돋보이는 현판들이 눈에 띕니다. 근대의 대선사 만공스님이 70세에 쓰셨다는 심검당 편액의 글씨가 인상적입니다. 도량을 천천히 둘러본 후에는 설법전으로 향합니다.

설법전에는 올해 5월 새롭게 봉안된 금동관음보살좌상(복제본)이 계십니다. 고려 말 왜구의 약탈로 강탈되어 일본 대마도의 관음사에 소장되어 있다가, 2012년 한국인 절도단이 이를 훔쳐 국내로 반입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불상이 만들어진 고향 부석사로 돌아가야 한다는 환수운동과 함께 소유권을 둘러싼 한일 간의 치열한 법적 공방이 전개됐습니다. 

10여 년의 재판 끝에 대법원은 “해당 불상이 서산 부석사의 소유임은 고증되나, 일본 관음사가 오랜 세월 동안 점유하며 취득시효를 완성했으므로 소유권은 일본에 있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진품 불상은 고향에서 약 100일 간의 친견법회 후 일본으로 반환되고 말았지요. 부석사는 우리 부처님을 우리 땅에 모시고 싶다는 염원을 담아 복제본을 제작하여 누구나 친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백제의 불심을 담은 국립익산박물관

충청도에서 광주로 돌아오는 길, 전라북도에 위치한 국립익산박물관에 들렀습니다. 전시실 한쪽 벽면 가득 등불을 켠 듯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기다란 경전에 다가가봅니다.

국보인 금제 금강경판입니다. 왕궁리 오층석탑에서 출토된 이 유물은 얇게 편 은판 위에 금을 두껍게 도금한 뒤, 자그마치 19장의 경판에 금강경을 새겨 넣은 것입니다. 판과 판 사이에 경첩을 끼워 책장을 한 장씩 넘겨볼 수 있도록 세심하게 고안했다는 점은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답사단의 카메라가 연신 찰칵댑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해체 및 보수하는 과정에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국보 3중 사리함(사리장엄구)도 오랜 시간 답사단의 발길을 붙잡아둡니다. 가장 바깥쪽에서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금동제 사리외호, 그 안의 사리내호, 그리고 가장 안쪽에서 사리를 담고 있던 푸르스름한 유리제 사리병. 금속공예에 깃든 백제인들의 지극한 불심을 엿봅니다.

국립익산박물관은 일반 지역 박물관이라기보다는 전국에서 손 꼽는 불교미술전문박물관이라 해도 손색 없습니다. 광주와 비교적 가까운 만큼, 나들이 길에 부러 들러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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