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법문

백두에 올라 세상을 바라보라!

4박 5일 함께 했던 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

백두산 천지는 전생에 나라를 구하고, 삼대가 덕을 쌓아야 비로소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오죽하면 백 번 올라 겨우 두 번 볼까 말까 하다 해서 백두산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제대로 된 천지는 구경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만큼 비와 구름에 가려 있는 날들이 많고 설령 날씨가 좋다 하더라도 수시로 급변하는 탓에 청명한 하늘과 새파란 천지를 보기가 매우 어려움을 비유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다만 날씨 탓만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백두산 천지는 우리 한민족의 뿌리이기에 관광이라도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는 결코 천지를 친견할 수 없다는 준엄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번 탐방에 나선 여러분들은 모두 처음으로 백두에 올랐습니다. 그럼에도 천지는 여러분들을 기꺼이 환영했습니다. 우리는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도저히 현실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푸르른 천지를 친견했습니다. 천지를 만나기 위해 우리는 광주에서 새벽 5시에 출발하여 꼬박 하루를 버스와 비행기, 다시 버스로 이동하였고, 또 다음 날 반나절 이상을 버스로 이동했습니다. 우리가 백두산 천지를 친견하기 위해 이렇게도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던 것은 남의 나라인 중국을 경유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중국 땅을 거쳐서 간 것이 아닙니다. 천지 정상에서 우리는 현수막 한번 제대로 펼치지 못했습니다. 광개토대왕비에서는 사진은 물론 한국말로 된 설명은 아예 하지도 못했습니다. 중국의 공안은 우리들의 행동을 시종일관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남의 땅에서 온갖 눈치를 봐가며 과거 만주벌판을 호령했던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그리고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친견해야만 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우리 어른들이 여러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는 남의 눈치를 봐가며 백두산에 올랐지만, 앞으로 여러분들은 광주에서 KTX를 타고 한 번에 백두산역까지 가는 그런 세상을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 선물하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가 여러분들에게 바라는 바이고, 여러분이 해야 할 바입니다. 이미 백두산 천지가 여러분들을 온몸으로 환영하며 인증했으니, 여러분들은 충분히 자격과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여러분들은 글로벌리더가 되어 온 세계를 누빌 것입니다. 그러나 도대체 글로벌리더가 무엇인지, 어떤 모습인지 실체가 모호합니다. ‘기왕 할 리더라면 글로벌하게 하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밖에 딱히 떠오르질 않습니다. 당장 저부터도 감이 잘 오질 않습니다. 그런데 이번 탐방에서 글로벌리더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중국 요녕성 대련시에 소재한 관동법원과 여순감옥에서 만난 안중근 의사는 항일 독립투사이기 이전에 20세기의 글로벌리더였습니다. 의사는 자신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것은 대한의 독립은 물론 나아가 동양의 평화를 위함이라고 당당하게 밝혔습니다. 20세기가 시작하며 동아시아는 러시아와 일본을 비롯한 제국 열강의 각축장이 되어 러일전쟁, 청일전쟁 등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일제는 대륙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자신의 야욕을 드러내며 조선을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이에 의사는 20세기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한·중·일 3국이 서로 협력하고 화합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여순 지역을 개방하고 공용화폐를 발행하고 평화군을 양성하는 등 ‘동양평화’를 위한 비전을 제시하였습니다. 실로 시대를 앞서가는 혜안(慧眼)이며, 20세기 동아시아가 요구하는 비전이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관동법원은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습니다. 중국의 지도자인 주은래는 동아시아의 항일운동은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정도로, 중국 역시 안중근 의사를 20세기의 훌륭한 영웅으로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당시 여순감옥에서 안중근 의사를 담당했던 일본인 간수는 의사의 인품과 선비로서의 기개에 감동하여 본국에 돌아가서도 평생을 사당에 모시고 기렸다고 합니다.

안중근 의사는 항일 독립운동의 지도자이면서 동시에 이웃나라는 물론 적국까지도 감동시킨 인품의 소유자였습니다. 한·중·일 3국이 모두 존경했던 의사야말로 전쟁으로 점철된 20세기의 진정한 글로벌리더였습니다. 20세기의 시대정신을 온몸으로 실천했던 안중근 의사를 마주하며, 21세기의 글로벌리더의 자질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가장 중요하고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인격의 수양입니다. 일찍이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 하였습니다. 수신(修身)이 되지 않고는 그 무엇도 할 수 없습니다. 바탕이 굳건해야 그 위에서 시대의 과제를 올바르게 꿰뚫어 통찰하는 지혜를 세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전생에 지은 복으로 백두산 천지를 친견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글로벌리더의 모습도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이제, 여러분 스스로 수신(修身)할 시간입니다.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세상을 올바르게 통찰하는 지혜를 키울 시간입니다. 그리하여 온 지구 생명들의 평화를 위해 노력할 시간입니다.

이번 역사 탐방이 여러분의 인생길에서 잊혀지지 않는 이정표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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