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살을 발라 먹인 설두라건녕
부처님이 되고자 하는 보살이
첫 번째 성취할 덕목은 보시(布施)이다.
보시는 널리 베푸는 것이고,
나누는 것이고,
또 도와주는 것이다.
남을 돕는다는 것,
참 쉽지 않은 일이다.
《현우경》에 다음 이야기가 나온다.
부처님께서 왕사성 죽림정사에 계실 때였다. 그때 현자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바라나시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법륜을 굴리셨을 때 그 가르침을 가장 먼저 듣고 깨달아 제자가 된 사람이 아약 교진여(阿若憍陳如) 등 다섯 비구입니다. 부처님, 세상에 우연이란 없습니다. 그 다섯 사람은 전생에 부처님과 어떤 인연이 있었기에 꿀처럼 달콤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일 먼저 맛보게 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다섯 사람은 전생에 나의 살을 가장 먼저 먹고 굶주림을 면한 사람들이다. 그 인연으로 금생에 내가 베푼 법(法)의 음식을 가장 먼저 먹고 해탈에 이른 것이다.” “전생에 그들이 부처님의 살을 먹었다고 하셨는데, 어떤 인연이 있었습니까? 부디 자세히 설명해 주소서.”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먼 옛날 한량없고 헤아릴 수도 없는 아승기겁 전에 이 염부제를 다스리던 설두라건녕(設頭羅健寧)이라는 큰 나라의 왕이 있었다. 그 왕은 자비심이 많아 백성을 친자식처럼 사랑하였다. 어느 날이었다. 꼬리를 길게 단 붉은 혜성이 나타났다. 그 혜성은 밤에만 아니라 대낮에도 그 모습이 뚜렷했다. 점성사(占星師)가 이를 관찰하고 왕에게 보고하였다.
‘큰 혜성이 나타나면 12년 동안 가뭄이 들고 비가 내리지 않습니다. 재앙이 닥쳤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왕은 신하들을 모두 모아 이 문제를 의논하였다. 그리고 곧 명령하였다.
‘우리나라 인구를 조사하고, 또 현재 창고에 보관한 곡식이 얼마나 되는지 보고하라. 그러면 12년 동안 백성 한 사람 당 곡식을 얼마만큼 배급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모두 계산해 보니, 백성들에게 돌아갈 몫이 하루에 한 되도 되지 않았다. 백성들의 생명을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점성사가 예견했던 대로 기나긴 가뭄이 닥치고, 수많은 백성이 굶주림에 시달리다 죽어갔다. 왕은 밤잠을 이루지 못하며 백성을 구제할 방안을 궁리하였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잠시 머리도 식힐 겸 부인과 신하들을 거느리고 성 밖 동산으로 나들이를 가게 되었다. 동산에 도착하자, 피로와 굶주림에 지친 부인과 신하들이 곧 나무 그늘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설두라건녕 왕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방을 향해 예배하고 서원을 세웠다.
‘지금 이 나라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어 말라 죽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이 몸을 버리고 큰 물고기가 되어 일체중생을 구제하게 하소서.’
왕은 곧 나무꼭대기로 올라가 스스로 땅바닥에 몸을 던졌다. 왕은 그 자리에 죽었고, 소원대로 큰 강에 물고기로 태어났다. 그 물고기는 몸길이가 500유순이나 되었다. 마침 그 강가에서 목수 다섯 명이 도끼로 목재를 다듬고 있었다. 물고기가 그 목수들에게 다가가 말하였다.
‘당신들도 배가 고픕니까?’
사람처럼 말하는 물고기에 목수들이 깜짝 놀랐다.
‘네, 무척 배가 고픕니다.’
‘그럼 그 도끼로 내 살을 잘라 가십시오.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은 가져가도 좋습니다.’
목수들이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요즘처럼 먹을 것이 없어 서로 빼앗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세상에 당신은 왜 자기 살까지 주려는 겁니까? 당신처럼 훌륭한 존재를 해치면 우리가 천벌을 받을 것이요.’
목수들이 주저하자, 물고기가 처연한 눈빛으로 말했다.
‘나는 이 공덕으로 훗날 부처님이 되고자 합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내 살을 잘라 허기진 배를 채우십시오. 당신들이 지금 먼저 내 살을 먹으면 내가 훗날 부처님이 되었을 때 법(法)의 음식도 당신들에게 가장 먼저 베풀겠습니다.’
목수들은 물고기의 권유에 따라 도끼로 그의 살을 잘라 배부르게 먹었다. 물고기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목수들에게 부탁하였다.
‘마을로 돌아가, 음식이 필요한 사람은 모두 와서 내 살을 가져가라고 사람들에게 알려주십시오,’
소문은 곧 온 나라에 퍼졌고, 굶주린 백성들이 강가로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큰 물고기는 사람들이 먹기 좋도록 자신의 몸을 강가에 나란히 드러냈다. 한쪽 옆구리 살이 모조리 없어져 뼈만 앙상히 남자, 물고기는 스스로 몸을 뒤집어 다른 쪽 옆구리를 사람들에게 내밀었다. 그러는 사이 앙상하던 뼈에서 새살이 돋아났다. 물고기는 그렇게 몸을 뒤척이며 12년 동안 굶주린 사람들을 구제하였다.”
부처님께서 잠시 말씀을 멈추셨다가 다시 말씀하셨다.
“아난아, 궁금하냐? 그때 그 설두라건녕 왕이 바로 지금의 나이니라. 그리고 그때 나의 살을 가장 먼저 먹은 다섯 목수 지금의 저 아약 교진여 등 다섯 비구이니라. 그 인연으로 저들이 금생에 나의 가르침을 가장 먼저 맛보게 된 것이니라.”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동화가 있다. 보시란 그 동화 속 나무처럼, 제 살을 발라 먹인 설두라건녕 왕처럼 아낌없이 주는 행위이다. 그러니 손해 볼 용기가 없다면 아마 보시는 불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