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면
세상은 필연(必然)이다.
인생은 인(因)과 연(緣)이라는 씨줄과 날줄로 엮어가는 한 폭의 천이니,
그 천에 나타나는 문양은 억지를 부린다고 변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부탁한다고 쉽게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삶에서 가장 큰 인연(因緣)은 행위 즉 업(業)이다.
따라서 삶에서 겪는 갖가지 행(幸)과 불행(不幸)에 변화를 주고 싶다면
반드시 그럴만한 업(業) 즉 새로운 생각, 새로운 말, 새로운 행동을 해야만 한다.
많은 이들이 행복으로 꼽는 것 가운데 하나가 장수(長壽)이다.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잡보장경》에 다음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에 어떤 나이 지긋한 스님이 숲 아랫마을에서 어린아이를 하나 만났다. 어린아이는 처음 만난 스님을 보고 두 팔을 벌리며 친구처럼 반기더니, 스님이 아랫마을로 탁발을 갈 때마다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러다 결국 부모님을 졸라 출가를 허락받고 그 스님의 제자인 사미가 되었다.
사미는 늘 밝게 웃으며 숲속 생활에 만족하였다. 어린 나인데도 투정 부리는 법이 없고 살던 집을 그리워하지도 않았다. 스승은 그런 사미가 귀엽고 또 사랑스러워 무척이나 아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스승은 오랜 수행의 결과로 아라한의 경지에 올라 여섯 가지 신통(神通)을 빠짐없이 갖추게 되었다. 숙명통(宿命通)이 열린 스승은 사미의 전생을 살펴보고 깜짝 놀랐다. 총명하고 부지런한 그 사미가 전생에 선정과 지혜 등 다른 공덕은 많이 쌓았는데 육식을 즐기며 살생(殺生)의 죄업을 많이 지은 것이었다.
살생을 많이 한 자는 단명(短命)하기 마련이었다. 스승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다시 사미의 앞날을 신중히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사미의 수명이 겨우 일주일밖에 남질 않았다. 스승은 사미의 가혹한 운명이 원망스럽고, 자신의 운명도 모른 채 마냥 해맑게 웃는 사미가 불쌍했다. 고심 끝에 스승이 사미를 불렀다.
“얘야!”
“네, 스승님.”
“부모님을 뵌 지 얼마나 됐지?”
“출가하고는 뵙지 못했으니, 한 2년쯤 되었나요?”
“부모님이 보고 싶지는 않니?”
“보고 싶지요.”
“그런데 왜 말하지 않았니?”
사미가 한참 머뭇거리다가 제법 다부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보고 싶지만 저는 세속의 길을 버리고 부처님의 길로 들어선 출가자입니다. 스승님, 출가자가 세속의 인연을 그리워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너는 형제가 몇이지?”
“위로 형님과 누나가 있고 아래로 동생도 하나 있습니다.”
“동생도 있었니?”
“네, 제가 출가할 때 세 살이었으니, 지금 다섯 살쯤 되었겠네요.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요.”
“보고 싶지 않니?”
제법 꿋꿋한 모습을 보이던 사미가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보고 싶어요.”
스승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얘야, 집에 한 번 다녀오거라.”
사미가 고개를 들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물었다.
“그래도 됩니까?”
“그럼, 그래도 되지. 부처님께서 끊으라고 하신 것은 세속에 대한 애착(愛着)이지, 은혜와 의리도 모르는 사람이 되라는 게 아니란다. 세상에서 너에게 가장 큰 은혜를 베푸신 분은 너의 부모님이고, 너에게 가장 큰 사랑과 관심을 가진 이는 너의 형제들이다. 부모 형제의 바람과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네가 출가하여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거라. 그것이 사람의 도리란다.”
사미가 그래도 미심쩍은지 재차 스승에게 물었다.
“스승님, 혹시 제가 마음에 들지 않아 집으로 돌려보내려는 것은 아니지요?”
스승은 사미를 안심시키려고 환하게 웃으며 짐짓 큰 소리로 말했다.
“아니다, 이 놈아! 집에 가서 일주일만 있다가 꼭 돌아오거라. 안 오면 내가 데리러 갈 것이다.”
사미는 신이 나서 가사와 발우를 챙겨 들고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그런 사미의 뒷모습을 애처로운 눈길로 바라보며 스승이 속으로 말했다.
“사미야, 다음 생에는 더 좋은 인연으로 만나자.”
어느덧 일주일이 훌쩍 지났다. 스승이 선정에 들었다가 깨어나 조용히 숲길을 거닐고 있을 때였다.
“스승님!” 외마디 소리와 함께 사미가 두 팔을 벌리고 달려와 스승을 꼭 안았다.
마치 옛날에 마을에서 처음 만났을 때처럼. 스승은 깜짝 놀랐다. 죽었어야 할 사미가 멀쩡하게 살아 돌아온 것이었다. 게다가 사미의 얼굴을 살펴보니, 그새 장수할 관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스승이 기쁨에 넘쳐 사미의 손을 잡고 물었다.
“얘야, 그동안 도대체 무슨 공덕을 지었느냐?”
“공덕요? 특별히 공덕을 쌓은 건 없는데요.”
“아니다, 너의 관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뭔가 좋은 일을 한 게 분명하다.”
“좋은 일요? 아!”
사미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스승님을 하직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불어난 냇물이 길가 개미집을 덮쳐 개미 수만 마리가 떼로 물살에 휩쓸리고 있더군요. 그대로 두면 몽땅 죽을 게 뻔했습니다. 그래서 가사를 벗어서 흙을 담아 물길을 막고, 개미들을 높은 곳 마른 땅으로 옮겨주었습니다.”
사미가 해맑게 웃으며 스승에게 말했다.
“자랑할 만한 좋은 일은 그거 하나밖에 없는데요.”
그런 사미를 보며 스승도 따라서 환하게 웃었다. 삶은 필연이다. 어제의 결과인 오늘은 바꿀 수 없지만, 오늘 새로운 행동으로 내일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이것이 필연이다. 내가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면 타인의 생명을 해치지 말고, 또 타인의 생명을 살려주는 복된 행동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