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묵당 편지

염불

어제는 남해 보리암으로 가을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이른 아침 출발하는 버스 안에서 비구니 스님이 염불하는 천수경을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들은 제대로 된 염불이라 매우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출발하는 어수선한 분위기가 금방 차분하게 가라앉고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문득 아주 오래 전 일이 생각났습니다. 중학교 무렵,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집에서 종종 염불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부모님 중 한 분께서 염불 테이프를 틀어 놓았던 모양입니다. 가끔 집에서 할 일 없이 빈둥거리면서 듣는 염불 소리가 어린 마음에도 참 좋았습니다.

나중에 커서 서울서 혼자 사회생활하며 힘들고 지칠 때면 가끔 집에서 듣던 염불 소리가 생각났습니다. ‘훈습薰習’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치 연기에 향이 배듯, 안개가 옷깃에 스며들듯 내 안에 스며들어 나의 습관이 되고 성격이 되고 체질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저도 그랬나 봅니다. 아주 오래 전 듣던 염불소리가 내 안에 훈습되어 먼 훗날, 출가의 인연을 만든 것이 아닐까 혼자 생각했습니다.

오늘 하루 배경음악처럼 잔잔하게 집안에 염불을 틀어놓고 지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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