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 선암 마을
광주 광산구의 진산인 어등산 자락의 자연마을 가운데 가장 큰 마을은 선암마을이다. 송정리에서 어등로를 따라 함평 쪽으로 가다보면 호남대학교 못 미쳐 오른편에 아담하게 자리해 있는 마을이다.
선암마을은 좌우로 어등산 책상봉의 능선이 완만하게 뻗어내려 마치 어머니 품속같이 포근하다. 마을 앞에는 풍부한 유량을 가진 황룡강이 흐르고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명당마을이다. 여기에 옛부터 마을입구에는 선암제라는 연못이 있고, 방풍목적으로 심은 나무가 고목이 되어 마을의 재앙을 막아주었다.
선암마을의 명칭은 고려시대 이곳에 자리한 선암사(仙岩寺)에서 유래됐다. 이곳은 목포-나주로 이어지는
영산강 지류인 황룡강과 함께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목으로 교통 요충지였다. 일찍이 중앙과 지방을 연결하는 역참의 하나인 선암역이 자리했다. 선암사는 지역민중의 안락뿐 아니라 한양으로 향하는 이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도량으로 성황을 이뤘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이름이 같은 승주 선암사를 작은 절이라 불렀다. 이후 선암사는 폐찰되고 선암역과 선암마을 등 지명에서 선암사의 흔적을 찾을 뿐이다.
선암마을에는 고려 때 조성한 3층 석탑이 하나 남아있다. 선암탑으로 불리는 3층 석탑은 마을 안쪽 민가의 문 옆에 있었으나 현재는 인근에 카페가 들어서고 정원으로 옮겨져 선암마을을 지키고 있다. 선암탑은 높이 약 1.6m 크기로 시멘트 기단위에 옥개석 3매와 탑신석, 갑석, 보륜, 보주가 각각 1매씩 남아있다. 초층 옥개석에는 지름 5cm, 깊이 8cm 크기의 구멍이 뚫려있고, 옥개석 아래 층급받침은 아랫단부터 3단, 2단, 1단으로 되어있다. 부재가 많이 소실되었지만 석탑 전문가들은 고려시대 선암사에 자리한 탑으로 추정한다.
마을주민에 따르면 “선암탑은 본래 5층 석탑으로 자유당시절 어느 국회의원이 송정공원으로 옮긴 뒤 마을에 나쁜 일이 많이 생겨 주민들이 다시 석탑을 찾아오면서 3층으로 줄었다”고 한다. 선암탑과 함께 어등산에는 천운사, 여둔사, 보광사 등 옛 절터가 있어 선암마을은 ‘절골, 탑골’로 불리고 있다. 또한 근래 선암마을에는 연산군 때 선암사 주지스님이 심었다는 수령 5백 년 된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었으나 아쉽게도 몇 해 전 관리 부주의로 고사되고 말았다.
선암마을은 장성-광주-나주-영광을 잇는 삼남대로의 길목으로 선암역이 자리한 역참마을이기도 하다. 사람이 많이 오가는 길목이다 보니 선암마을 앞 황룡강 어귀에는 시장이 열렸다. ‘선암배낫드리’라는 포구에서 열리던 선암장은 광산지역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다. 세월이 흘러 일제 강점기 때 선암마을 아랫들녁에 서울-목포간 철로가 놓이면서 송정역이 생기고 선암시장도 서서히 송정역 앞으로 옮겨갔다.
현재는 선암시장이 열리던 곳에 15,000여명이 거주하는 신도시 선운지구가 건립되어 도심 속 살기 좋은 전원마을로 각광받고 있다. 선운지구에는 선운초, 중학교, 보문고, 호남대학교가 위치해 좋은 교육환경으로 대규모 인구가 유입되고 있다. 또다시 현대판 선암역이 펼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