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산마을
부처님 발우에서 유래하여 달동네에서 가볼만한 마을로 탈바꿈
광주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광주천은 끝자락에서 작은 산 하나를 살짝 휘감아 흐른다. 이 산은 모양새가 부처님 공양 그릇인 발우(鉢盂)와 같아 발산(鉢山)이라 부른다. 산 능선이 마치 밥그릇을 엎어놓은 듯 둥그렇다. 멀리서 바라보면 광주천 상류에 자리한 성거사지 거북이가 공양하기 위해 발산으로 향하는 듯 하다.
발우는 ‘식기’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파트라(paatra)’를 음역한 발다라(鉢多羅)와 의역한 ‘우(盂. 사발)’를 합친 것이다. 불교에서 공양할 때 사용하는 그릇으로 나무나 놋쇠로 만들고 발우대, 발다라, 바리때, 바리 등으로 부른다. 부처님이 탁발할 때 공양받은 음식이 아무리 많아도 넘치는 일이 없고 아무리 적은 양 이라도 그릇에 가득 차 보였다고 해서 응량기(應量器), 응기(應器)라고도 부른다.
〈태자서응본기경 太子瑞應本起經〉에 “부처님은 성도 후 7일간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그때 두 사람의 우바새가음식물을 올렸는데 부처님은 과거 여러 부처가 그릇에 먹을 것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 을 안 사천왕은 각각 알나산정의 돌 속에서 자연의 그릇을 얻어 부처님에게 바치자 부처님은 4개의 그릇을 왼손 위에 놓고 오른손을 그 위에 얹으니 신통력에 의해 하나의 그릇으로 변했다”고 적혀 있다.
발우의 형상이나 용량은 경전의 기록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고승법현전 高僧法顯傳〉에 의하면 대체로 잡색으로 광택이 있고 용량은 2두(斗) 정도라고 한다. 발우는 부처님이 열반한 후 여러 나라로 전해졌고, 스님들의 공양 그릇으로 오늘에까지 전해지고 있다. 스님들이 꼭 지녀야할 삼의일발(三衣一鉢)은 세벌의 가사와 공양하기 위한 발우를 뜻하며 옛 조사스님들이 전법할 때 전법의 증표로 삼기도 하였다.
한반도는 지형적으로 산이 많고, 그 형태 또한 여럿이다. 대부분의 산봉우리는 붓처럼 뾰족하게 솟아있다. 때로는 능선이 한일 자(一)처럼 길다랗게 이어진 산도 있다. 유달리 곡선을 좋아하는 한민족은 어머니 젖과 같이 능선이 둥그런 산을 좋아한다. 한옥의 지붕선이나 달항아리의 곡선이 마음을 편안케 하듯 둥그런 산도 안락함이깃들어있다. 전국 어디에나 발우를 닮은 발산이 산재해 있다.
광주의 발산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이 모여 들면서 본격적으로 마을이 형성됐다. 1960년대 광주천 건너에 방직공장이 생기고 전국에서 모여든 여공들로 활력이 넘쳐났다. 밤마다 별이 총총해 ‘별마루’라고도 불린 발산마을은 체조영웅 양학선을 비롯해 꿈을 펼치는 젊은이들을 길러냈다. 1990년대 이후 도심 공동화 현상과 방직공장의 쇠퇴로 여공들이 떠나면서 발산마을도 점차 쇠퇴해지기 시작했다.
근래에 광주의 대표적인 달동네 발산마을에 새로운 변화가 찾아왔다. 2014년 지자체와 민간단체가 협력해 청춘발산마을 사업을 전개했다. 다양한 디자인 작업과 청년들의 입주, 주민 생활 개선 프로그램을 통해 마을에 활력이 불기 시작했다. 이제 청춘발산마을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광주 가볼 만한 곳, #사진 찍기 좋은 마을 #주민과 청년이 공존하는 마을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