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 박지도 중노두길 2
스님과 불자들이 갯벌에 돌을 깔아 만든 길
신안군에서도 서남쪽 끄트머리에 있는 박지도와 반월도를 보라색을 뜻하는 퍼플(purple) 섬으로 부른다. 이 퍼플섬에 스님들이 길을 낸 신비의 바닷길, 중노두 길이 있다. 오래전 부터 섬과 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어디에든 섬에는 절이 있었다. 바닷사람들은 용왕을 바다의 주인으로 여겼고, 불교가 들어오면서 용왕 사상은 불교에 흡수되었다.
자연스럽게 섬사람들은 보타낙가산에 주석하고 있는 관세음보살과 용왕을 의지하며 살았다. 신안의 섬들은 물이 빠지면 갯벌로 서로 연결된다. 노두는 선비가 말을 탈 때 딛고 올라서는 돌을 말한다. 썰물 때 섬과 섬 사이에 드러난 갯벌에 돌을 놓아 걸어갈 수 있도록 한 길이 노두길이다. 노두길은 섬을 오가는 통로이자 큰 섬의 학교로 등교하는 학문의 길, 섬에서 생산한 물품을 유통하는 삶의 길이기에 소통의 길, 생명의 길, 문화 물류 교류의 길이다. 퍼플섬인 박지도와 반월도에도 노두길이 있다.
그런데 특별히 퍼플섬의 길을 ‘중노두’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전설 하나가 전해져 온다. 박지도 산속에 조그만 암자가 있었고, 반월도 뒷산에도 암자가 하나 있었다. 지금도 섬에는 암자터가 남아 있고 우물이며 깨진 기왓장도 나온다. 박지도와 반월도 암자에는 각각 스님이 한 분씩 정진하고 있었다. 스님들은 서로 만나 수행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번거롭게 배를 타고 오가야 했다. 그래서 두 섬의 암자에 있는 스님들이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갯벌에 돌을 놓기 시작했다. 스님들은 망태에 돌을 담아 반대편 섬을 향해 부어나갔다.
어느날, 마침내 양쪽에서 시작된 노두길이 갯벌 가운데서 만나게됐다. 두 스님은 완성된 노두길 가운데서 한참동안 마주 바라보았다. 너무 먼 곳까지 들어온 것일까. 어느새 바다는 들물 때가 되어 물이 차올랐다. 뒤늦게 두 스님은 돌아갈 길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박지도와 반월도 사람들은 바닷가에 모여 잠겨가는 두 스님을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물이
어느정도 차고 양쪽 섬에서 배를 띄워 바다로 나갔지만 이미 바다는 두 스님의 그림자마저 삼켜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썰물이 되어 바닷물이 빠져나간 갯벌에는 돌무더기 길만 박지도와 반월도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후 박지도와 반월도 사람들은 이길을 “중노두길”이라고 불렀다. 섬 마을 사람들이 기억하는 중노두길 이야기는 현지 표지판에도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표지판에는 두 섬 암자에 젊은 비구와 비구니 스님이 살았고, 스님들이 서로 보고파 돌을 쌓아 노두길이 완성됐다고 적고 있다. 중노두길을 수행자인 스님들의 사랑 이야기로 각색해 버려 아쉽기 그지없다.
예로부터 냇가의 다리나, 길가의 옹달샘 등등 중생을 이롭게 하는 나눔 실천행은 대부분 스님과 불자들이 해왔던 것이다. 퍼플섬의 중노두길도 그러하다. 두 섬에 사는 스님들이 앞장서서 신도들이 힘을 보태어 갯벌에 길을 냈던 것이다. 지금도 퍼플 섬을 잇는 중노두길은 물이 빠지면 마치 초승달처럼 휘어져서 드러난다. 근래들어 두 섬에는 현대식 퍼플교가 놓이면서 중노두길은 흔적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