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외송(外松)마을
송광사 바깥에 있는 사하촌… 음식문화거리 형성
승보종찰 조계총림 송광사가 자리한 조계산은 본래 송광산(松廣山)이었다. 산 이름은 송광사에서 유래됐다.
고려 중기,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정혜결사를 위해 넓은 도량을 찾던 중 화순 모후산에서 나무로 깎은 솔개를 날렸다. 나무 솔개가 날아가 앉은 곳은 길상사라는 작은 암자였다. 오늘의 송광사 국사전 뒷 능선 치락대이다. 그 후 솔갱이(솔개의 사투리)가 자리 잡은 터여서 사찰 이름을 송광사로 바꾸었다. 이후 절이 자리한 산 이름도 송광산으로 불리게 됐다.
솔갱이는 솔(松)가지를 지역에서 부르는 방언이기도 하다. 보조국사가 이곳에 주석하기 전에는 산에 소나무가 많아 솔갱이 산, 솔메로도 불렀다고 한다.
솔메가 송광산으로 바뀐 것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전한다.
송광사의 송(松) 자를 파자해 보면 ‘十八公’으로, ’18분의 귀한 분’이라는 뜻이 된다. 장차 이 산에서 ‘18분의 큰 스님(松)이 나와 불법을 널리 펼친다(廣)’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송광사는 보조국사 이래 16분의 국사를 배출했고, 승보종찰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앞으로도 두 분의 국사가 더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승보종찰 송광사는 스님들의 수행도량으로 한국불교를 대표하고 있다.
승보종찰 송광사는 대찰답게 사중에 수행하는 대중이 많고, 참배객도 줄을 잇고 있다. 그런 이유로 자연스럽게 사하촌도 번성한 것이다.
송광사 입구에 자리한 외송마을은 송광사를 대표하는 사하촌이다. 송광사를 찾는 이들이 쉬어가는 식당가 아래에 자리한 마을이다.
송광사의 사세가 커지면서 절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불당마을이 생겼다. 마을이 커지자 1890년경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송광사에서 일하던 이들이 송광사 밖에 모여 사는 마을, 또는 송광사 바깥쪽에 있다고 하여 ‘외송(外松)마을’이라 부른다.
인근에 있는 평촌마을은 평민이 사는 평지의 마을이란 의미이다. 순천군 송광면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외송마을·평촌마을·금평마을과 신풍마을 일부를 합쳐 개설했다.
송광사 산문에서 외송마을까지 벚꽃길 따라 길게 논밭이 연이어 있다. 대부분 송광사에 귀속된 농지이다. 송광사 스님과 불자들의 기부로 형성한 정제(淨財)이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논농사를 짓기도 했지만 근래 들어 연꽃을 심어 연방죽이 되었다. 2014년 송광사 스님들과 마을주민이 송광사영농조합법인 솔두레를 결성했다. 송광사 연방죽은 한여름이면 만개한 연꽃이 송광사 참배객들에게 부처님 미소를 보낸다. 가을이면 솔두레에서 연근과 연잎, 연줄기를 가공해 보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