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불교 지명이야기

해남 미황사 사하촌 우분리(서정마을)

국토 끄트머리 해남의 명산인 달마산에는 천년고찰 미황사(美黃寺)가 자리해있다.

‘아름답기가 무엇과도 견줄 바 없이 으뜸인 절’이다.

이렇게 멋진 절 이름은 창건 설화에서 유래됐다.

미황사는 신라 의조 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조선 숙종(1692년) 때 지은 <미황사 사적비>에는 신비한 창건 이야기가 상세하게 기록 되어있다.

신라 경덕왕 때인 749년 어느 날 돌로 만든 배가 달마산 아래 포구에 닿았다. 배 안에서 범패 소리가 들려 어부가 살피려 다가갔지만 배는 번번이 멀어져 갔다. 이 말을 들은 의조 화상이 정갈하게 목욕하고 스님들과 동네 사람 100여명을 이끌고 포구로 나갔다.

그러자 배가 바닷가에 다다랐는데 금인(金人)이 노를 젓고 있었다. 배 안에는 <화엄경> 80권, <법화경> 7권, 비로자나불, 문수보살, 40성중, 16나한, 그리고 탱화, 금환(金環), 검은 돌들이 실려 있었다. 사람들이 불상과 경전을 모실 곳에 대해 의논하는데 검은 돌이 갈라지며 그 안에서 검은 소 한 마리가 나왔다. 소는 순식간에 커다란 소로 변했다.

그날 밤 의조 화상이 꿈을 꾸었는데 금인(金人)이 “나는 본래 우전국(優塡國)왕인데 여러 나라를 다니며 부처님 모실 곳을 구하였소. 이곳에 이르러 달마산 꼭대기를 바라보니 1만불이 나타남으로 여기게 부처님을 모시려 하오. 소에 경전과 불상을 싣고 가다 소가 누웠다가 일어나지 않거든 그 자리에 모시도록 하시오.”하는 것이었다.

의조 화상이 소를 앞세우고 가는데 소가 한 번 땅바닥에 눕더니 일어났다. 그러더니 산골짜기에 이르러 이내 쓰러져 일어나지 아니했다. 의조 화상은 소가 처음 누던 자리에 통교사(通敎寺)를 짓고 마지막 머문 자리에는 미황사(美黃寺)를 창건했다. 미황사의 ‘미(美)’는 소의 울음소리가 아름다워서 따온 것이고, ‘황(黃)’은 금인(金人)의 황홀한 색에서 따와 붙인 것이다. <미황사 홈페이지>

<사적비>에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지역민에게 내려오는 이야기는 계속된다. 소가 쓰러졌던 곳에 소 무덤을 만들고 마을 이름을 우분리(牛墳里)라 불렀다는 것이다.

달마산 미황사에서 산 아래로 내려가다 왼쪽으로 꺾어들면 농가가 몇 채 나온다. 소 무덤이 있던 우분마을이다.

미황사 사하촌인 우분리는 근래 들어 인근 마을과 통합되어 송지마을이 되었다.

지역 어르신들에 따르면 1960년대까지만 해도 소 무덤이 있었다고 기억한다. 아쉽게도 먹을것이 부족했던 시절에 농지를 개간하면서 소 무덤을 없애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땅이름은 남아 1998년 발행한 해남군 문화관광 홍보자료에서 ‘우분리’ 지명을 찾을 수 있다.

최근 들어 우분마을의 ‘소 무덤’을 찾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미황사 창건의 주역인 소 무덤을 찾아내고 복원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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