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불교 지명이야기

곡성 목사동(木寺洞)

산자수려한 고을에 부처님 집이 18곳

곡성은 의리와 충절의 땅으로 알려져 있다.

경남 의령의 의병장 곽재우(1552∼1617)가 1592년 4월 24일 의병을 모아 왜군을 무찔렀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의령은 의병운동의 발원지로 불렀다.

그런데 전남 곡성의 유팽로(1554∼1592)가 곽재우보다 사흘빠른 4월 20일 읍민 주민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고 제1차 금산 전투에서 싸우다 전사했다. 그럼에도 어떤 연유인지 의령이 의병운동의 발원지로 유명세를 타다가 몇해전부터 곡성이 의병운동의 발원지로 그 위상을 되찾았다.

곡성에는 또한분의 충신이 있다.

고려의 개국공신인 신숭겸(?~927)이다.

곡성 목사동면 구룡리 뒷산 비래봉 정기를 받고 태어난 신숭겸은 고려의 무장으로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하여 개국공신이 됐다. 신 장군은 대구 팔공산 전투에서 후백제군에게 포위되어 왕건으로 변장하고 싸우다 전사했다. 용마가 신 장군의 머리를 물고 곡성 태안사 뒷산 장군단에 나타나 사흘간 울부짖다가 죽자 스님들이 신 장군의 머리와 용마를 장사지냈다.

오늘의 목사동면에는 이곳출신 신숭겸의 말무덤 전설과 함께 신 장군의 무덤을 만들고, 매년 3월 16일 산제와 함께 제사를 지내고 있다.

곡성군 목사동은 비래봉(691m) · 희아산 · 아미산 · 신유봉 등이 솟아 있고, 유치산에서 발원한 목사동천이 고을 중앙부를 북류해 보성강에 흘러들며 작은 평야지를 이룬다. 토지가 비옥하고 수원이 풍부해 농사짓기에 좋은 고을이다. 이처럼 산자수려한 살기좋은 고을이기에 사찰이 많았다고 한다.

목사동(木寺洞)이라는 지명도 절이 18곳이 있다고 하여 이름지어졌다. 한자 목(木)자를 파자하면 十 + 八이 된다.

옛 지명은 지역의 특성을 나타내는 고유명사로 2자 또는 3~4자가 보통이었다. 통일신라 경덕왕대에 이르러 지명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중국식으로 2자로 통일했다. 그럼에도 목사동은 한자지명이면서도 글자가 3자로 되어있어 특별한 지명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예전에 목사동에 대표적인 절이 18곳이었지만 아쉽게 모두 폐사되고 아미산 천태암 한 곳만 남아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천태암은 1400년전 신라 문무왕 5년(665) 혜암율사가 창건한 했다고 전한다. 고려 보조국사가 천태암 석굴에 16나한을 모시고 정진한 명찰이다.

현재 천태암에는 극락보전, 석굴형태의 나한전, 산신각, 응향각 등의 전각과 보조국사가 수행한 좌선대가 자리해있다.

목사동면을 대표하는 천태암은 불교, 문화, 예술, 건축 등에서 우리나라 고유의 역사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산으로 인정되어 2020년 전통사찰 제97호로 지정됐다.

천태암에 오르면 확 트인 전망이 일품이다. 절아래 펼쳐진 대황강이 아미산 아래를 휘감고, 크고 작은 산과 마을, 평야가 국내 최고의 전망을 자랑한다.

북으로 무등산과, 서 유마산, 남 조계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며, 이른아침 운해와 저녁 노을이 장관이다.

시절인연이 익어 목사동 18개 사암을 찾아 복원해 한국불교의 명맥을 이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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