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심사에 공덕을 지었던 사람들 증심사 부도전
증심사 부도전에는 증심사 중수에 공덕이 많은 신도와 스님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6기의 부도(浮屠)와 17개의 비석이 있다. 과거 증심사 부도전은 취백루 아래쪽 공터에 있었으나, 현재는 일주문 좌측 언덕으로 옮겨놓았다. 6기의 부도 중 3기는 스님의 부도고, 3기는 신도들의 것이다. 먼저 수월당, 월암당, 규봉당 부도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수월당 부도’는 ‘수월당보문’이 새겨진 탑호만 있을 뿐, 건립연대를 알 수 있는 명문은 없다. 재미있는 것은 기단부를 받치고 있는 거북모양의 조형물이 파격적이라는 점이다. 일반적인 거북이의 모습을 단순화 시킨데다 왼쪽으로 고개를 약간 꼬아 민화속의 거북이를 보는 듯 해학적인 느낌이다.
월암당 부도는 ‘월암당대사민성’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부도다. 뒷면에는 ‘강희 56년 을미 5월에 세움(康熙五十四年五月日乙未立)’이라 쓰여 있어 조선 숙종 41년(1715)에 건립된 것을 알 수 있다. 이 스님의 정확한 행적은 알 수 없으나 증심사 유물 가운데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있기에 그 가치가 높다. 4면 중 정면과 양쪽 측면은 다소 변형된 연화문을 시문하였다. 후면에는 인면을 조각하였는데, 주먹코에 왕방울 눈으로 웃는 모습이 흡사 장승의 얼굴처럼 표현되었다.
규봉당 부도는 석종형 모양으로 산신각 옆에 있던 것을 옮겨 왔다. 당호로 보아 증심사와 규봉암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3기의 신도의 탑(부도)은 1900년대에 세워졌다. 고려시대의 석탑 양식을 부분적으로 함유하고 있으나, 일본식 영향을 받기도 했다. 각각의 이름과 연도는 다음과 같다. 康津崔氏之塔(강진최씨지탑 : 1914), 曺氏淨行華化塔(조씨정행화화탑: 1919), 大德華安魂塔 大德華 漢陽趙南洙(대덕화안혼탑 대덕화 한양조남수: 1927)
1950~60년대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재가신자들의 납골탑이 대웅전 앞에 세워졌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가 없지만, 증심사에 시주한 공덕이 클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이처럼 부도전을 통해 증심사를 위했던 사람들을 알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