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묵당 편지

공든 탑

숱하게 많은 돌탑들을 봤습니다만, 직접 쌓아 보기는 증심사 와서 해 본 것이 처음입니다. 확실히 그냥 보는 것 보다 직접 쌓을 때 정성이 더합니다. 그만큼 간절해지고 그만큼 소중해집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무리 공든 탑이라 하더라도 무너지더군요. 누군가가 무너뜨리는 건지, 제 힘으로 버티지 못해서 무너지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내가 쌓았던 돌탑들 몇 개도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한동안 실망스런 마음에 돌탑들을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며칠 전, 종무소로 내려가는 계단 옆에 또 누군가가 돌탑을 쌓았더군요. 한눈에 봐도 정성이 무척 들어간
돌탑이었습니다. 이것은 기록해야겠다 싶어서 얼른 사진을 찍었습니다. 다른 곳은 몰라도 매일 오가는
여기 돌탑은 사진으로라도 꼭 남겨두고 싶습니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하는 속담도 있습니다만, 공든 탑도 인연이 닿지 않으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자연이 무너뜨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인연이나, 시절 인연을 도래하게 하는 노력 또한 우리가 짓는 좋은 인연들입니다. 누군가의 공든 탑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탑입니다. ‘설마 공든 탑이 무너질까’ 하는 무관심과 안일함보다,

누군가의 정성은 우리 모두의 정성이라 생각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공든 탑을 지키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가을이 되기를 바랍니다.

중현 두손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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