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묵당 편지

백중 영가등

누구나 한번은 죽습니다. 문제는 지금 생에서 죽음은 단 한번 뿐이라는 겁니다. 살면서 죽음을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죽을 뻔한 경험은 할 수 있어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살아서는 경험할 수 없으니 산 사람은 죽음에 대해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없으니 두려울 수 밖에요. 두려우니 어떻게든 죽음을 내 뜻대로 지배하려는 욕망이 일어나는 겁니다.

어떤 이는 말합니다. 죽는 건 무섭지 않은데, 아프지 않게 죽었으면 좋겠다고요. 그런데 실제로 황천길 가는 거 미리 한번 예행연습 해보니까, 죽음에 가까이 갈수록 무지 무지하게 아픕니다. 급성 심근경색의 증상을 말할 때, “살면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고통”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만큼 아픕니다. 어쨌든 죽을 때는 엄청 아파요.

안 아프게 죽는 그런 건 아주 드물 것입니다. 또 혹자는 말합니다. 죽을 때 주변 사람들 피해줄까봐 그게 걱정이라고 하는데, 그건 당장 숨 넘어가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시기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죽기를 바라는 것이야말로 부질없는 욕심입니다. 죽음은 피할 수도 없거니와 친절하지도 않습니다. 살아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는 것입니다.

올해부터는 백중 기간 동안 지장전 앞마당에 영가님들을위한마당등을설치했습니다. 절에 오가는 분들이 한번이라도 죽음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드리고자 함입니다.

부디 타인의 죽음을 통해 나의 죽음을 직시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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