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묵당 편지

햇살 가득한 적묵당의 만추

출가를 결심하고 했던 가장 큰 일은 미루고 미루던 치과 치료를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출가하면 다시는 세상 구경 못 할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치과 치료의 두려움을 이긴 셈이지요.
상당한 숫자의 충치가 있었고, 빼야 할 사랑니도 3개나 있었습니다. 모든 치료를 2달 안에 끝내달라고 하니 의사는 도대체 이해불가하다는 표정으로 어디 멀리 가냐고 물어보던 기억이 나는군요. 무리해서 급하게 진행했지만 2달 안에 다 마무리하지 못하고 몇몇 작업은 광주의 치과에서 했었습니다. 그렇게 뺏던 사랑니 중 하나를 행자 시절 내내 보관했습니다. 속인인 내가 남긴 마지막 흔적 같아서 차마 버릴 수 없었습니다. 계속 보관할 생각이었습니다만, 개인소지품을 엄격하게 금했던 3주간의 행자입소교육에 다녀 오니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무척 아쉬운 일입니다. 얼마 전에 밥을 먹다가 뭔가 커다란 돌같은게 씹혀서 보니 이빨 때운 것이 떨어져 버렸습니다. 무려 25년 만의 일입니다. 25년이나 되도록 멀쩡하게 잘 버틴 것이 정말 대견했습니다.
더 대견한 것은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전혀 가늠할 수 없음에도 덜컥 출가할 용기를 냈던 25년 전의 제 자신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럭저럭 중노릇을 이어가고 있는 ‘중현’이라는 이 중도 대견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1998년 봄, 신촌로타리 인근의 “신촌치과”. 지금도 그 자리에 잘 있는가요?
응답하라.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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