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아름다움을 찾아서, 서산 마애여래삼존상
일제강점기 강제 반출된 서산 보원사지 고려철불
보원사지는 고려시대에 번창한 화엄종 사찰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철불을 보유하고 있었다. 철불 외에도 보원사지에는 당간지주, 오층석탑, 법인국사탑비, 법인국사탑, 석조가 남아있어 당시 사찰의 규모가 매우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문화재 조사 당시 보원사지 철불의 가치를 눈여겨보고 1918년 조선총독부로 이운을 결정했다. 이운 당시 ‘불상을 어떤 방식으로 기차에 옮길 것인가’가 그 지역 사람들에게 흥미를 일으켰다고 한다.
철불의 무게가 수 톤이기 때문에 기차로 옮겨 싣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은사지 철불은 해방 후부터 지금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현재 보원사에는 복제한 부처님을 모셔놓고 있다. 수덕사, 보원사, 서산시는 “박물관에 있으면 하나의 소장품에 불과하지만 서산에서는 지역의 철기 문명을 대표하는 문화재이자 보원사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성보”라며 힘을 모아 환지본처 운동을 펼치고 있다.
팔부중상이 둘러싸고 있는 보원사지 오층석탑
목탑에서 석탑으로 변환되는 과정의 탑 형식으로 아래층 기단에는 사자상을, 위층 기단면에는 각각 2구씩 팔부중상(八部衆像)을 새긴 것이 특별하다. 팔부중상이라고 하면 불법을 지키는 여덟 수호신으로 천, 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를 말한다.
삼존불인데 왜 좌우보처에 보살님이 계실까? 서산 마애여래삼존상
백제의 미소로 알려진 서산 마애여래삼존상. 백제의 미소를 길이 전하고 싶어 풍화를 방지하기 위해 1974년 보호각을 설치했다. 그러자 마애불에 백화현상이 생기고, 자연 채광에 의한 백제의 미소를 볼 수 없게 됐다. 결국 2006년 보호각을 32년 만에 해체했다. 현재는 자연채광을 받은 부처님의 미소를 친견할 수 있다.
삼존이라 하면 과거불인 연등 부처님, 현재를 상징하는 석가모니불,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 부처님을 말한다. 그런데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미륵반가사유상과 오른쪽에는 제화갈라보살입상이 새겨져 있다.
이유인즉, 석가모니 부처님은 전생에 선혜보살이라는 수행자로 연등부처님에게 수기를 받았다. 쉽게 말하면 연등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스승이라 할 수 있다. 삼존불이긴 하지만 협시보살이라는 형식만 본따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인 제화갈라보살로 조각하고, 미륵 부처님도 보살의 형상으로 만들어서 부처님의 협시보살로 모신 것이다.
마음을 여는 도량, 개심사
우리나라에서 가장 늦게 벚꽃이 핀다는 서산 개심사. 개심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심검당, 종각, 요사채 등 휘어진 나무 그대로를 살려 건축했다. 그 때 당시 경제력의 부족으로 휘어진 나무를 사용했을 테지만 현대인의 시선에서는 자연스러운 멋이 느껴진다. 요사채에 딸린 큰 아궁이도 잘 보존하고 있어 옛날 절집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고려와 조선의 양식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개심사 대웅전
개심사 대웅전은 몇 채 남아있지 않은 조선전기 법당이다. 고려말에 우미량(牛尾樑)을 구조적으로 잘 표현했다면, 조선시대에는 그 기술이 퇴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개심사 대웅전은 고려시대 주심포계 양식에서 조선시대 다포계 양식으로 이전해가는 과도기적 양식을 보여주고 있어, 또한 우미량이 부분적으로 사용되었다.
단아한 미가 돋보이는 수덕사 대웅전
‘수덕사’하면 경허스님과 일엽스님을 먼저 떠올리지만 단아한 미가 엿보이는 대웅전도 빠지지 않는다. 수덕사 대웅전은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법당이다. 법당을 전면에서 바라볼 때는 간결한 미가 보인다면, 측면에서는 맞배지붕의 선과 노출된 목부재의 구도가 아름답게 보인다.
수덕사 대웅전은 우미량이 있는 건축물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어 눈 여겨 보아야 한다. 이러한 목구조는 완벽한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만들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건축기법으로, 건축이라기보다는 마치 공예품과 같다. 비록 고려시대의 작품이기는 하지만 백제의 기술적 토양 위에 만들어진 걸작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