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침의 과정, 소와 목동에 비유해 열 단계로 묘사
세상이 끓고 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더위가 날마다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무엇보다 탐진치 삼독의 불꽃이 몸과 마음까지 태우고 있어 펄펄 끊는 화탕지옥이 따로 없다.
그래서 부처님은 ‘삼계화택(三界火宅)’ 비유를 통해 불타는 집에서 나오라 했다.
어떻게 빠져나올 것인가?
갑진년 하안거에 들어간 수행자들이 가마솥 무더위에도 가부좌를 틀고 앉은 사연이다.
불타는 집에서 나와야 하는 이들이 어찌 산중의 수행자뿐이랴. 사바세계에 살고 있는 중생 모두의 일이다.
화탕지옥을 벗어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걱정만 하고 있을 일 또한 아니다.
먼저 답을 찾은 옛 스님들이 그 길을 쉽고도 간단하게 알려주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마음 찾는 것을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십우도(심우도)이다. 글을 모르는 이도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림까지 곁들였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는가.
‘나’라는 본성을 찾아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소에 비유했다 하여 심우도(尋牛圖), 또는 목우도(牧牛圖)라 한다. 혹자는 견성에 이르는 과정을 열 단계로 간명하게 묘사했다 하여 십우도(十牛圖)라 한다.
경전에서도 야성의 소를 계(戒)로 다스려 오욕에 들지 않도록 하는 공부를 소와 목동에 비유해 설명하고 있다<유교경>.
소 치는 사람이 항하를 건너는 것을 수행자가 생사의 강을 건너는 것에 비유하기도 했다<증일아함경>.
십우도는 중국 송나라 때 곽암 선사의 소 찾는 그림이 대표적이다. 사찰 전각의 벽화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승보종찰 송광사 승보전 벽면에도 곽암 선사의 십우도가 큼직하게 자리해 있다.
십우도, 열 개의 장면은 이와같다.
① ‘심우(尋牛)’이다. 동자가 소를 찾기 위해 고삐를 들고 산속을 헤매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처음 발심(發心)한 수행자가 아직은 선이 무엇이고 본성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그것을 찾겠다는 열의로 공부를 시작하는 단계를 의미한다.
② ‘견적(見跡)’이다. 동자가 소 발자국을 찾은 상황을 묘사한 것으로서, 순수한 열의를 가지고 꾸준히 공부를 하다 보면 본성의 자취를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된다는 것을 상징화한 것이다.
③ ‘견우(見牛)’이다. 동자가 멀리 있는 소를 발견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이는 본성을 보는 것이 눈앞에 다다랐음을 상징한다.
④ ‘득우(得牛)’이다. 동자가 소를 막 붙잡아서 고삐를 잡고 끌고 가려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 경지를 선종에서는 견성(見性)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을 땅속에서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금강석을 찾아낸 것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때의 소는 검은색을 띤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아직 삼독(三毒)에 물들어 있는 거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⑤ ‘목우(牧牛)’이다. 거친 소를 자연스럽게 놓아두더라도 저절로 가야 할 길을 갈 수 있게끔 길들이는 장면이다. 삼독(三毒)의 때를 지우는 단계로 선에서는 이 목우의 과정을 가장 중요시하고 있는데, 이 상황의 소는 길들이는 정도에 따라서 차츰 검은색이 흰색으로 바뀌어 가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⑥ ‘기우귀가(騎牛歸家)’이다. 동자가 소를 타고 구멍 없는 피리를 불면서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때의 소는 전체가 완전한 흰색을 띠고 있다. 이것은 소가 동자와 일체가 되어 피안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뜻하며, 구멍 없는 피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깊은 마음자리에서 흘러나오는 본성의 소리를 의미한다.
⑦ ‘망우존인(忘牛存人)’이다. 집에 돌아와 보니 애써 찾은 소는 간데없고 자기만 남은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결국 소는 본성을 찾기 위한 방편이었으므로 이제 고향집으로 돌아오게 됐으니 방편은 잊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는 뗏목을 타고 피안(彼岸)에 도달했으면 뗏목을 버려야 한다는 교종(敎宗)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⑧ ‘인우구망(人牛俱忘)’이다. 소 다음에 자기 자신도 잊어버린 상태를 묘사한 것으로 텅빈 원상(圓相)만을 그리고 있다. 객관이었던 소를 잊었으면 주관인 동자 또한 성립되지 않는다는 주관과 객관의 혼융 상태를 상징화한 것으로서 이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것으로 간주된다.
⑨ ‘반본환원(返本還源)’이다. 이제 주객의 구별이 없는 경지에 속에 자연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비치는 경지를 표현하고 있다. 산은 산, 물은 물 그대로의 모습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한 경지를 상징화한 것이다.
⑩ ‘입전수수(入廛垂手)’이다. 동자가 지팡이에 큰 포대를 메고 사람들이 많은 곳을 향해 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때의 큰 포대는 중생들에게 베풀어 줄 복과 덕을 담은 포대로서, 불교의 궁극적인 뜻이 중생제도에 있음을 상징화한 것이다.
십우도 첫 번째 장면인 ‘심우’는 발보리심(發菩提心)을 뜻한다. 두 번째 장인 ‘견적’에서 여섯 번째 ‘기우귀가’까지는 수행, 일곱 번째 ‘망우존인’과 여덟 번째 ‘인우구망’은 보리심의 성취, 아홉 번째 ‘반본환원’은 열반의 경지 진입, 마지막 열 번째 ‘입전수수’는 득의(得意) 후에 중생을 제도하는 단계를 나타낸 것이다.
이 가운데 주목해 보아야 할 장면은 다섯 번째 목우이다. 검정색의 야생 소가 목동에 의해 길들여지면서 점점 밝은 흰색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감동적인 것은 열 번째 마지막 장면인 입전수수이다. 궁극적으로 깨치고자 하는 것은 중생제도를 하기 위함이다.
증심사 주지 중현스님은 불교 강의에 앞서 이렇게 강조하곤 한다.
“공부해서 남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