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심에 대한 올바른 생각 – 자비경 해설 ②
초기경전 수타니파타에 보면 부처님께서 자비에 대해 설한 부분이 있습니다. 상당히 유명한 구절로, 이 내용만을 발췌하여 <자비경>이라는 하나의 경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자비경>을 쭉 읽어가면서 중간중간 첨언하는 것으로 법문을 이어가겠습니다.
니르바나에 이른 사람이 편안한 경지에서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
공명하고 성실하며 말은 부드럽고 점잖아야 하며,
잘난 체하고 뽐내지 않는 것이다
<자비경>이라고 했으니 ‘자비란 무엇이다’라는 이야기가 먼저 나와야 할 텐데, 말은 부드럽고 점잖게 해야하며 잘난 체 뽐내면 안 된다는 내용이 처음에 나옵니다. 자비라고 하면 흔히 상대방에 대한 자비심 즉 내가 중생들을 대하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조금 다른 각도에서 봐야 합니다. 자비심이 나 자신에게는 어떤 마음인지, 그리고 상대방에게는 어떤 마음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있어서 자비심, 즉 내적 측면에서의 자비심이란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잘 보고, 스스로 자신의 욕망을 잘 다스리고 있는지 본인이 잘 살피는 것입니다.
만족할 줄 알며, 변변치 않은 음식으로 생활하라. 잡일을 줄이고
생활을 되도록이면 간소하게 하라. 모든 감관을 편안하게 하고
남의 집에 가서도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
도대체 이런 구절이 자비심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언뜻 생각해보면 자비심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듯합니다만, 이 구절은 한마디로 자기 욕망을 절제하라는 말입니다. 음식, 생활, 욕심내는 것을 절제하는 마음이 곧 자비심이라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우리 생각과 많이 다릅니다만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신 것입니다.
현명한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살만한
그런 비열한 짓을 해서는 결코 안 된다.
현명한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사지 않으려면 행동이 현명해야 합니다. 자비롭게 산다는 것은 현명하게 산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그 다음에 이렇게 이야기하십니다.
살아 있는 것들아, 부디 행복하고 편안하여라.
이것은 자비심의 의미를 풀어서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즉 모든 중생들이 행복하고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곧 자비심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비심이 나를 향할 때는 욕망을 다스리고 절제할 줄 알고 현명하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생명체라도 약한 것이건, 강한 것이건, 큰 것이건,
중간 것이건, 제 아무리 미미하고 보잘것없는 것일지라도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있는 것이나,
가까이 있는 것이나, 이미 태어난 것이나, 앞으로 태어나려 하는
것이나, 살아 있는 모든 것들아, 부디 행복해져라.
이 구절은 모든 중생들에 대해서 연민의 마음을 가지되 구별하지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약하다, 강하다, 크다, 작다는 등의 구별을 하지 말고 모든 중생들이 다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물론 머릿속으로는 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모든 부모들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아이들을 똑같은 마음으로 사랑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내 자식이 더 귀엽고 잘나보입니다. 이런 구별하는 마음을 없애야 합니다.
구별하는 마음을 없애라 함은 이것이 내 것이라는 생각을 없애라는 것입니다. 나의 영역을 정하고 여기까지는 내 것, 내 사람, 나의(우리) 식구, 나의(우리) 회사, 나의(우리) 민족 등으로 구별 짓는 것. 그리하여 내 범주에 있는 것만 좋아하고 그 밖에 있는 것은 차별하는 마음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자식이니까 많이 사랑하고 내 자식이 아니니까 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을 속여서는 안 된다. 또 남을 멸시해서도 안 된다.
남을 괴롭히거나 고통을 주어서는 더욱 안 된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같은 맥락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가지면서 내 자신에 대해서는 욕망을 잘 다스리고 절제하는 마음을 확실하게 가져야 올바르게 중생들에 대한 자비심을 가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어머니가 하나뿐인 자식을 보호하듯 살아 있는 이 모든
생명체에서 한없는 연민의 마음(자비심)을 일으켜야 한다.
그 자비심이 골고루 스미게 하라. 위로, 아래로, 또는 옆으로,
장애도 없고, 적의도 없고, 척짓는 일도 없이 이 누리에
두루두루 스미게 하라
모든 중생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구석구석 스며들어가도록 하라는 이야기를 다시금 하고 있습니다.
서 있을 때나, 걸을 때나, 앉을 때나, 누울 때나
잠자지 않는 동안에는 이 연민의 마음을 굳게 지녀라.
자비심이라는 것은 마음 내킬 때 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화가 날 때는 화가 나서 자비심을 내지 않고, 심심하면 할 일이 없으니 자비심을 내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손자가 재롱을 피우면 사랑스러워서 내고, 울고 보채면 귀찮아서 내지 않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루 24시간 꾸준히 내야 하는 것입니다.
사악한 견해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신을 절제할 줄 아는 사람,
사리를 잘 판단하며, 욕망의 늪을 이미 나온 사람, 이런 사람은
결코 두 번 다시 이 윤회 속에 태어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자비심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평소 우리가 생각하던 상식과는 달라도 많이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앞에서 자비심은 모든 중생에 대한 평등하고 조건없는 연민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자비심을 언급하며 가장 먼저 자신의 욕망을 절제할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현명하고 지혜로울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왜일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조건 없는 연민의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나 탐욕과 소유욕 그리고 어리석어서 분별하는 마음 때문에 조건 없는 연민의 마음이 제대로 드러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욕망을 절제하고 지혜를 밝혀서 모든 번뇌를 일으키는 아상(我相)를 털어내야 비로소 우리 안의 자비심이 온전하게 드러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자비심의 겉모습이 아니라 자비심이 어디서 생겨나고 무엇을 양식으로 삼는지를 이야기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자비심의 외형에만 관심을 기울인 나머지 자비심을 가로막는 내 안의 무명(無明)을 도외시하였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대부분의 사랑은 욕망과 어리석음으로 왜곡된 사랑입니다. 심지어 뿌리 깊은 소유욕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조건 없는 연민의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음을 또한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 역시 내 안에 조건 없는 연민의 마음이 있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내기 위해 내 안의 거친 욕망과 소유욕, 어리석음을 몰아내야 할 것입니다. 부디 사랑에 눈멀지 말고, 내 안의 거친 욕망을 애써 외면하지 말고, 어리석은 분별심을 합리화하지 말고 자비심의 싹이 무럭무럭 자라나도록 열심히 노력하기 바랍니다.
오늘 <자비경>을 한 부씩 나눠드린 것은 가지고 가셔서 하루에 한 번이라도 보고 읽으시라는 뜻입니다. 읽고 하루에 다만 10분이라도 내 마음속에서 자비심을 끌어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드린 것입니다. 매일매일 읽으시고 마음속에서 자비심을 스스로 일으키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