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불교 지명이야기

광산 운수리 절골마을

운주사 보광사 천운사… 수많은 절들이 자리한 골짜기

빛고을 광주는 아미타부처님이 상주하는 부처님 고을이다. 빛고을에는 수많은 사찰이 자리해 정토세상을 구현했다. 현재도 빛고을 사방에 절골(寺洞)이 남아있어 부처님 도량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동쪽 무등산 증심사 계곡 절골과 북쪽 동림동 운수산 절골, 남쪽 서창동 송학산 절골 그리고 서쪽에는 어등산 절골이 있다.

광주 광산구의 진산인 어등산은 해발 338m로 내륙 산으로는 높은 편이 아니다. 그럼에도 정작 산에 들어서면 타원형으로 뻗은 산세가 여느 명산에 뒤지지 않는 심산유곡을 자랑한다. 산의 등성이 깊고 골짜기가 길어 구한말 때에는 의병들이 왜병과 싸우던 충의의 터이기도 하다. 어등산의 여러 골짜기 중에서 동쪽으로 가장 큰 골에 운수동 절골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사동(寺洞), 즉 절골은 산기슭에 사찰이 많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이 골짜기에는 수많은 절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몇몇 사찰의 이름만 남아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1759년 『여지도서』에 의하면 광주에서 서쪽으로 40리 어등산에 조선조 초기에 창건된 ‘여둔사’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어등산 절골에 있던 사찰로 추정된다.

지금은 어등산 골프장으로 개발되어 터만 남아있는 운수사, 보광사, 천운사 등의 사찰도 절골에 있었다. 또한 광산구 절골의 일부인 운수동은 운수사라는 사찰에서 유래되었고, 현재도 운수마을로 이어지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송정면 관할인 절골의 사동리, 운수사가 있던 곳은 운수리로 명명되었다가 일제강점기 말에는 운수리로 통합되었고, 1988년 광주 광산구로 편입되면서 운수동이 되었다.

구한말 호남 의병활동의 본거지였던 어등산 운수리 절골은 해방 후인 1948년 절대방위라는 국가정책에 따라 평동 복룡산과 함께 194만 평이 국방부에 징발됐다. 그 후 47년간 민간인이 출입할 수 없는 군사지역이 되어 육군포병학교 포 사격장으로 사용되었다. 1995년 상무대가 장성으로 이전하면서 포성이 멈췄고, 이제는 골프장을 비롯한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어등산 운수동 골짜기 아래에는 운수제라는 저수지가 있어 농업용수로 이용하고 있다.

운수마을에는 ‘연일정’이라는 샘이 있다. ‘연화약수’로 알려진 연일정은 수량이 많고 물맛이 좋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연화약수는 위장병과 성인병에 효험이 있다고 전해진다. 근래들어 샘가에 연화약수비(蓮花藥水碑)를 세웠는데 표지석 뒷면에 ‘만수원천 감약수(萬壽源泉甘藥水·일만살까지 살게 하는 감로약수)’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운수마을은 하남산단 외곽도로가 나기 전에는 연화약수가 있는 운수마을과 절골을 지나 무너미재를 넘어 한양으로 올라갔던 중요한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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