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묵당 편지

범종각. 흐트러진 기와

범종각 기와가 흘러내렸습니다. 혼자서 그리한것은 물론 아닙니다. 지난겨울 역대급 폭설의 흔적이지요.
무거운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기와가 제 모양을 잃고 흐트러졌지만, 추운 날씨는 흐트러진 상태를 그대로 붙잡아 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낮 동안 영상의 날씨가 이어지면서 얼어붙었던 것들이 하나둘 녹기 시작했습니다. 동장군에 붙잡혀 있던 기와도 중력에 이끌려 아래로 흘려 내리고 있습니다. 벌써 가장자리는 떨어져 버렸습니다. 봄의 시작은 해동입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것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하면서 봄은 시작합니다. 선입견과 달리 봄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추운 겨울이 흐트러진 기와를 붙잡아 주었듯, 고통스런 상처와 힘겨운 사투를 할 때는 정작 고통도 잊기 십상입니다. 오히려 상처가 서서히 아물기 시작하면서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 망각한 상처의 고통도 커지는 법입니다. 상처는 생길 때보다 아물 때가 더 위험합니다. 무슨 일이든 시작과 끝이 힘듭니다.

하지만 시작과 끝을 만든 건 다름 아닌 사람의 마음. 힘들어하는 건 다만 마음의 일일뿐입니다. 시작을 시작이라 여기고, 끝을 끝이라 여기고, 절망을 절망이라 여기고, 희망을 희망이라 여기는 마음이 항상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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