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6-09] 지장전의 모든 것

지장보살은 “지옥에 있는 단 한 명의 중생을 구제할 때까지, 지옥 중생 모두가 극락왕생할 때까지 결코 지옥을떠나지 않겠다”는 대원을 세운 보살님이다. 『지장보살본원경』에 명시된 그의 핵심적 정체성은 위대한 서원, 즉’대원(大願)’에 있다. “지옥이 비지 않으면 맹세코 성불하지 않겠으며, 중생을 모두 구제한 뒤에야 깨달음을 얻으리라.”지장보살은 스스로 부처가 될 수 있는 충분한 공덕과 지혜를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성불을 미루고 지옥의 문앞을 지키고 있는 대자비심의 상징이다. 개인의 해탈에 머물지 않고, 중생의 고통의 곁에 서있는 대승불교 자비 사상의 극치다. 

지장전에서 본존 지장보살을 좌우로 협시하는 이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다. 도명존자는 현세의 스님이었으나착오로 저승에 갔다가 지장보살의 신비로운 정체를 목도하고 그의 제자가 된 인물로, 출가자의 구도적·상징적 측면을 대변한다. 무독귀왕은 악업을 정화하는 귀신들의 왕으로, 분노와 독기를 제거하고 심판의 신성함을 보좌하는 정법의 수호자다.

그리고 이들 삼존불을 중심으로 좌우로 도열한 10명의 시왕(十王)은 인간이 생전에 지은 죄와 업장을 심판하여다음 생의 몸을 결정하는 주체다. 또한 각 시왕의 앞에는 심판을 정교하게 보조하는 판관과 기록을 담당하는녹사, 그리고 이들의 수고를 시봉하는 동자상들이 조각되어 있어 사후 세계인 명부의 질서와 경건함을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증심사 지장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열 명의 저승 대왕들은 화려한 관복을 입고 관료의 상징인 홀(笏)을 쥐고 있다. 왜지장전의 심판관들은 동아시아 조정의 ‘관료(대신)’의 복색을 하고 있을까? 이는 중국 당·송대 이후 불교가 도교의 저승 관념 및현세의 관료제적 형법 체계와 결합하면서 형성된 문화적 융합의 결과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한 인간의 일생을 평가하고판결하는 ‘사법적 법정’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꼭 불자가 아니더라도 천만 관객을 동원한 한국영화 <신과함께>를 통해 이들 시왕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명부의 재판관인 시왕이 각각의 지옥을 관장하여 십대지옥을 다스리며, 사후 3년 동안 10번의 재판을 통해 생전에 지은 죄업을 심판하는 것을 말이다. 다른 한편, 절에서 예불에 참여하는 불자라면 『천수경』에 수록된 ‘십악참회’ 구절을 곰곰이 곱씹은 적이 있을 것이다. 시왕의 십대지옥 심판 항목은 천수경의 십악참회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십악(十惡)은 신구의 삼업으로 지은 열 가지 대표적인 죄악이며, 이러한 죄악을 저지르면 죄악에 상응하는 지옥에 떨어진다. 

살생한 자가 칼날로 이루어진 산을 오르는 도산지옥, 탐욕을 저지른 자가 펄펄 끊는 솥에 들어가는 화탕지옥, 음란한 자가 얼음으로 뒤덮인 골짜기에 묶이는 한빙지옥, 속임수를 쓴 자가 잎사귀가 칼날인 나무에 둘러싸이는 검수지옥, 입으로 죄 지은 자의 혀를 뽑아 밭을 가는 발설지옥, 중독과 집착에 죄 지은 자가 가는 독사지옥, 분노를 참지 못한 자의 몸을 톱으로 써는거해지옥, 불평등의 죄를 지은 자가 뜨거운 철판 위에 놓이는 철상지옥, 유교적 윤리를 파괴한 자가 살을 찢는 매서운 칼바람에 고통 받는 풍두지옥, 그리고 앞선 9번의 재판 결과와 참회 여부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흑암지옥 등이다. 

지장전은 얼핏, 판결과 형벌로써 공포를 전시하는 공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지장보살이 중생에게 건네는 것은 공포가 아니라 구원과 성찰이다. 가장 깊고 어두운 지옥 바닥에까지 다다르는 지장보살의 석장(錫杖)과 여의주는 그 어떤 죄업을 지은중생이라 할지라도 진심 어린 참회가 있다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무한한 희망을 상징한다.

49재 동안 후손들이 올리는 재와 십악참회의 기도 역시 죽은 이의 죄업을 덜어주고 극락왕생을 돕는 타력과 자력의 공존을보여준다. 이처럼 지장전은 단지 죽은 자를 위한 추모 공간에 그치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는 불자들에게 선업의 장이 되어준다.  

증심사는 지난 7월 20일부터 세월의 흐름을 따라 미세하게 손상을 거듭해온 지장전 시왕상에 대한 보수불사를 진행하고 있다. 보수불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증심사 홈페이지 또는 월간 『증심사』8월호 소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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