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심사 얼마나 알고 있니?
지장전과 회심당
지장전과 회심당의 기이한 동거
현재 증심사 지장전은 두 개의 현판을 달고 있다. ‘지장전’과 왼편 출입문에 걸린 ‘회심당’이다. ‘지장전’ 이면서 ‘회심당’ 이기도 한 기이한 두 집 살림의 역사는 1950년 6.25 한국전쟁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절에서 옛 스님의 진영(초상화)을 모신 사당은 흔히 볼 수 있으나 수행자가 아닌 일반 신도를 위한 사당은 쉽게 볼 수 없다. 그런데 증심사에는 일찍이 일반 신도를 위한 사당인 회심당이 있었다. 그러던 차에 6.25 때 불타버린 지장전을 지을 마땅한 방법이 없어 옆에 있던 회심당을 헐고 지장전을 다시 지은 것이다.
채용신 화가 손끝에서 살아난 회심당
지장전 안에는 회심당 주인 부부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다. 회심당 주인의 이름은 정만재와 그의 부인인 하동 정씨다. 정만재는 조선시대 왕실의 친척들을 위해 설치한 관청 돈영부의 관리였다. 그의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지장전 한 켠에 걸린 ‘회심당기’를 통해 그가 절 안에 따로 사당을 지어 기릴 만큼 증심사를 위해 큰 몫을 했으리라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 초상화를 그린 ‘채용신’이라는 화가다. 채용신은 조선 말 고종, 흥선대원군, 최익현, 황현 등 내노라 하는 이들의 초상화를 그린 당대 최고 화가였다. 채용신은 관직에서 물러나 전주에 머물던 때인 78세(1927)에 이 초상화 두 점을 그렸다고 한다. 현재 초상화는 오랫동안 잘 보존하기 위해 송광사 성보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