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 지혜바라밀은 어떻게 닦는가
선정, 지혜바라밀은 선정바라밀, 반야바라밀입니다. 둘을 합하여 ‘지관’이라고 하며, 사마타(samatha)와 위빠사나(vipasynna)라고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마타란 산란한 마음을 멈추는 것으로서, 마음의 통일 또는 마음의 집중, 말하자면 ‘선’에 해당하며, 위빠사나란 관찰, 이해로서 ‘혜’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에도 ‘혜’의 성격이 있으며, ‘관’에도 마음의 통일의 성격이 있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양자를 선정과 지혜로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지관의 수행을 이야기 하겠습니다.
‘지(samatha)’란 “모든 경계에 대한 집착을 멈추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범부는 허망분별에 의하여,
인식내용이 그대로 외계의 실재라고 받아들이며, 경계의 집착을 여러 가지로 구상합니다.
그러나 객관은 마음이 지어낸 바이며, 객관이 그대로 외계라고 보는 허망분별을 벗어나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이것이 ‘지’입니다. 이미 객관이 없으면, 그것에 대응하는 주관의 허망분별도 멈추게 되는 것입니다.
이 ‘지’는 “사마타관에 수순하는 의의”라고 이야기 합니다. 사마타는 samatha의 음성번역이며 ‘지’라고 번역합니다. 지관은 본디 ‘지관쌍운’을 가리키며, 양자가 같은 곳에서 실현되는 것입니다. 지와 관이 함께 각각의 힘을 발휘합니다.
‘관(vipasyana)’이란, “인연에 따라 생성하고 소멸하는 모습을 분별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인연생멸’이란, 마음의 생멸하는 도리에 의하여 제법의 생멸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존재(법)의 시간적인 존재방식은 ‘생멸’인데, 그 생멸에는 연기의 이법이 관통하고 있습니다.
모든 존재의 생멸에 있어서 연기의 이법을 보기 때문에, 인연생멸의 상이라고 합니다. 이 경우의 ‘분별’은 허망분별이 아니라 분석하여 아는 것입니다.
위빠사나는 vipasyana의 음역이며, ‘관’이라고 번역합니다. 이 인연생멸의 모습을 분별하는 것이, “관의 본의”에 수순하는 것입니다.
‘관’의 심층에는 ‘지’가 있습니다. ‘지’란 모든 혼란스러운 망상을 멈추고, 모든 존재는 진여라는 인식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란 심진여문에 의하여 모든 경계에 대한 망상을 멈추고, 무분별이 되는 것이며, 근본무분별지를 성립시키는 것입니다.
이 근본무분별지에 서 있으면서도 심생멸문에서의 제법의 상을 분별하고, 그 이취를 관찰하는 것이 ‘관’이기 때문에 관은 후득지를 성립시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심진여문과 심생멸문은 ‘일심’의 양면이므로, 숙달하면 지와 관은 함께 일어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