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속이야기

사리불의 제자 균제 사미

<<현우경>>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언젠가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원정사에 계실 때였다. 그때 존자 사리불은 천안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제도할 만한 이가 있으면 곧 찾아가 제도하고는 하였다.

그 무렵, 나라와 나라를 떠돌며 무역업을 하던 어떤 상인들이 있었다. 그 상인들이 개를 한 마리를 데리고 다녔다. 오랜 여정에 식량이 부족했던 탓에 그 개는 늘 굶주려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상인들이 깊이 잠이 든 틈을 타서 개가 상인들의 고기를 훔쳐 먹었다. 그러다 발각되고 말았다. 아껴두었던 고기를 개가 먹어 치운 것을 본 상인들은 화를 참지 못하고 몽둥이로 개를 때려 다리를 부러뜨리고 말았다. 상인들은 개를 들판에 버리고 떠나버렸다. 오랜 굶주림으로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개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들판 한가운데 널브러져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사리불이 선정에 들었다가 그 광경을 천안으로 보게 되었다. 사리불은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서 성으로 향했다. 그리고 얻은 음식을 가지고 개가 있는 들판으로 향했다. 사리불이 다가가자, 개는 이빨을 드러내며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사리불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개를 부르며 천천히 다가갔다. 사리불의 따뜻함이 전해졌는지, 개는 곧 치켜떴던 눈을 내리깔고 얌전히 땅바닥에 엎드렸다. 사리불은 맑은 물을 개에게 먹이고, 가엾은 그 개에게 자신이 걸식한 음식이 담긴 발우를 내밀었다.

개는 그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렸고, 사리불의 지극한 보살핌으로 부러진 다리도 회복하였다. 그날 이후, 개는 숲에서도 거리에서도 사리불 주위를 맴돌았다. 사리불이 선정에 들면 곁에 가만히 엎드려 있고, 사리불이 선정에서 깨어나면 꼬리를 흔들며 다가가 사리불의 얼굴을 비볐다. 사리불은 그런 개를 부드러운 미소로 바라보며 등을 쓰다듬어 주면서 틈틈이 오묘한 법을 들려주었다.

오래지 않아 개는 죽었다. 그리고 사위국의 어느 바라문 집에 태어났다.

세월이 지나 어느 날 사리불이 혼자 다니면서 걸식하고 있을 때였다. 어떤 바라문이 사리불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러자 사리불이 웃으며 말했다.

바라문은 안색을 바꾸며 머뭇거렸다.

그리고 돌아서면서 농담처럼 말했다.

사리불은 그의 말을 새겨 두었다. 그리고 기원정사로 돌아왔다. 세월이 흘러 아이의 나이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였다. 사리불이 그 바라문의 집으로 찾아가 말했다.

바라문이 또 머뭇거리자, 사리불이 말했다.

바라문은 어쩔 수 없이 자기 아들을 사리불에게 맡겼다. 사리불은 그 아이를 데리고 기원정사로 돌아와 출가시키고 사미가 되게 하였다. 어린 사미는 사리불을 아버지처럼 여기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사리불은 그런 사미를 귀여워하며 차례차례 여러 가지 묘법을 자세히 설명하여 주었다. 사리불의 가르침으로 사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열리고 뜻이 풀려 아라한이 되었다. 여섯 가지 신통력을 얻은 균제 사미는 지혜의 힘으로 자신의 전생을 관찰해보았다.

그는 관찰하다가, 자신이 전생에 한 마리 굶주린 개였다가 스승인 사리불의 은혜를 입어 생명을 보존하고, 또 죽어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현생에서도 사리불의 가르침으로 도를 성취해 아라한의 과위까지 얻게 된 것이었다.

선정에서 깨어난 사미는 넘치는 환희심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균제 사미는 스스로 맹세하였다.

균제는 아라한이 되고도 제자를 두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맹세대로 어른이 되고도 구족계(具足戒)를 받지 않고 사미로 남았다.

세월이 흘러 죽음을 직감한 사리불이 부처님께 이별을 고하고 고향으로 마지막 여행을 떠났을 때, 그 곁에 함께한 이는 오직 한 사람 균제 사미였다. 고향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리불의 시신을 거두어 화장하고 그 유골을 수습한 이도 오직 한 사람, 균제 사미였다. 그리고 그 유골을 사리불이 쓰던 발우에 담아 멀리 사위성 기원정사 계신 부처님께 전한 이도 균제 사미였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균제 사미의 행적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균제, 그는 자신의 맹세대로 ‘영원한 사리불의 사미’로 살다가 조용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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