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불교 지명이야기

보성 존제산

존자 중에 으뜸인 ‘부처님 산’

지난호에 소개한 벌교 징광리 지명의 유래가 되는 징광사는 보성 존제산 자락에 자리해 있다. 존제산(703.8m)은 보성군에서 두번째 높은 산으로 벌교읍과 조성면, 율어면에 걸쳐 있다. 완만한 능선 위에 성벽처럼 웅장한 봉우리들이 백두대간 호남정맥을 따라 어깨동무하듯 펼쳐지면서 율어면 일대를 보호하는 진산이기도 하다.

존제산은 조정래 작가가 쓴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중심무대로, 부처님 땅이름이다. 예부터 존제산은 단순하게 ‘높은 산’으로 불려오다가 불교의 영향으로 높을 존(尊)자를 차용해 존자산(尊者山)으로 불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존자산으로 기록하고 있다. 존자는 불교에서 지혜와 덕을 갖추어 존경할 만한 사람이나 성인으로 깨달음을 얻은 아라한을 존경하여 부르는 명칭이다. 보성 지역에 내려오는 설화에 따르면, 고려 때 충렬왕이 남부지역을 순시하는 길에 광주에 이르러 시종하는 관원에게 남도의 명산을 물었다. 그러자 관원이 답하기를 첫째는 광주 무등산이고, 둘째는 나주 금성산, 셋째는 고흥 팔영산, 그리고 네 번째가 보성의 존자산이라 했다. 그러자 충렬왕은 존자산을 천자 제(帝)자를 써서 존제산(尊帝山)이라고 명명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존제산은 깨달은 아라한인 존자들 중에서도 으뜸인 부처님 산을 뜻한다. 그래서인지 존제산에는 불교와 관련된 땅이름이 많이 남아있다. 존제산 동쪽에는 부처님과 하늘님이 만나던 천치(天峙), 죽으면 한줌 흙이 된다는 진토재, 스님들이 법거량을 하던 석거리재 등이 있다.

존제산의 북쪽 유신리의 갓바위는 염주를 목에 건 스님 형상이어서 중바우라고 부른다. 산아래 마을에서 중바우가 있는 곳까지의 골짜기를 중바우골이라 하고 이 계곡의 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은 보물 944호(유신리 마애여래좌상)로 지정됐다. 본래 이곳에는 고려시대 존제사라는 사찰이 있었으나 19세기에 폐사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일월사가 자리해 있다. 일월사 중바우골 마애여래좌상은 세로 5m 가로 4.3m 정도의 큰 바위에 불상이 새겨져 있다.

이 부처님은 눈, 코, 입이 뚜렷한 얼굴을 갖추고 꽃부리가 위로 향한 연꽃무늬인 앙련이 새겨진 대좌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다. 부처님은 양손을 가슴 위에 올려 설법을 하는 설법인을 하고 있는데 국내에서 만나기 힘든 수인이다. 특히 두 어깨를 감싼 법의가 숄을 두른 듯 감싸고 있어 무척 독특하다. 어떤 이는 ‘어깨걸이개’라는 특별한 법복의 어깨문양으로 소개하며 새로운 연구대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또한 둥근모양의 두광과 신광이 분리되어 있어 고려시대의 우수한 불상으로 꼽는다.

유신리 마애부처님은 국난이나, 변고가 있을 때 땀을 흘리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지난 2014년에는 세월호 참사 2주 전에 맑은 액체가 마애불 하단부에서 이슬로 맺혀 흘렀다. 일월사는 훼손을 우려해 문화재청에 이같은 현상을 알리고 방지책을 질의했지만 뚜렷한 원인이나 방지책을 찾지 못했다. 2009년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을 당시에도 마애부처님이 땀을 흘리는 현상이 일어났다고 한다.

몇 해 전, 존제산 고갯길 정상에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 문학비가 세워졌다. 비석 아래에 조정래 작가의
말이 이렇게 새겨져있다. “징광산과 제석산은 태백산맥이라는 거대한 나무의 실가지에 피어난 잎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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