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묵당 편지

봄비

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봄비답게 온종일 부슬부슬 내리더니 오후 늦게서야 그쳤습니다. 물기 머금은 목련 꽃망울이 금방이라도 터질듯 잔뜩 부풀어 올랐습니다.

목련꽃은 해마다 이맘때면 작년과 꼭 같은 모양새로, 꼭 같은 방식으로 핍니다. 어쩌면 한 해도 빼먹지 않고 매년 꼭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는지 볼 때마다 신기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아무런 근심걱정없이, 그 어떤 분노나 좌절없이, 일말의 불안이나 두려움도 없이 맘 편하게 목련의 개화를 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혼자 생각해봅니다. 해마다 피는 목련은 여느 때와 다름없지만, 목련을 대하는 인간들의 모습은 매년 다릅니다. 올해 목련은 저 멀리 미얀마의 학살 소식과 함께 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미얀마는 지난 광주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간의 힘겨루기 싸움에 희생당하는 쪽은 약소국 미얀마의 백성들입니다. 해마다 어김없이 목련은 피는데, 미얀마의 민중들은 때이른 벗꽃처럼 흩날리며 쓰러지고 있습니다.

다른 곳도 아닌 이곳 혁명의 도시 광주에서, 다른 산도 아닌 무등산의 세인봉을 바라보며, 봄날의아침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꽃이 피었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활짝 웃어야 마침내 봄이 오는 것입니다. 봄은 항상 올 듯 말 듯 잔뜩 뜸만 들이다가 어느샌가 훌쩍 가버리곤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만큼은 그러지 않기를 간곡하게 바라고 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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