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은 인생의 도화지라고 한다. 나이가 들면서 삶의 궤적이 얼굴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곱게 나이가 들어가는 이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재가불자들의 자비나눔터인 광주 자비신행회에 들어서자 중년의 중후함으로 압도하는 사내가 맞이한다.
“쑥스럽네요. 어디에 자랑할 일도 아니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조경사업을 하는 백운 이현옥 거사다. 매주 토요일이면 자비신행회에서 소외된 이웃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토요일은 ‘나보다 남을 위하는 날’로 정해 자비실천행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무려 10년이 넘었다.
“내가 만든 음식을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 정말 좋습니다. 마음이 행복한 부자가 됩니다. 그러니 토요일이 기다려지고, 집을 나설 때부터 기분이 좋아집니다.”
매일 자비나눔을 펼치고 있는 자비신행회에서는 토요일마다 다문화가정, 보육원 아이들, 홀로된 노인 등 소외된 이웃들을 초청해 다양한 음식으로 만발공양을 펼친다. 백운거사는 자비신행회에서 맥가이버로 통한다. 힘도 세고 못하는 것이 없다. 더구나 요리는 수준급이다. 자장면, 탕수육, 돈가스, 함박스테이크, 통닭, 튀김, 삼계탕, 김밥 등등 한식과 중식은 물론 간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모든 음식이 재료 손질부터 직접 손으로 만드는 ‘수제’이다. 여기에 자비신행회 봉사자들이 사용하는 식재료는 모두 친환경 농산물만 쓰는 것이 원칙이다. 백운거사가 본래부터 음식에 솜씨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자원봉사를 하면서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다. 자비신행회에는 유명 음식점의 요리사들도 봉사에 참여하고 있다. 그들 옆에서 보조일을 하면서 직접 비법을 전수받았던 것이다.
“요즘은 끼니를 때우지 못하는 이가 없습니다. 배고픈 이에게 음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음식으로 대접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전에 올리듯 간절한 마음을 담아 공양합니다.”
대학생 때 불교학생회 활동을 한 백운거사는 요즈음 108배에 푹 빠졌다. 지난 2월부터 시작한 증심사 수요야간법회 창립멤버이다. 수요야간법회는 매주 수요일 오후 7시 대웅전에서 108배로 시작한다. 108배를 마치고 잠깐 좌선으로 몸과 마음을 가라앉힌 뒤 주지 중현스님과 차담을 나눈다.
“봉사도 건강해야 하는데 108배가 이렇게 좋은지 몰랐습니다. 요즘은 아침 저녁으로 108배를 하고 있습니다. 108배를 하다보면 몸과 마음이 가뿐해집니다.”
‘108배는 법당에서 해야 제 맛이다’는 백운거사는 틈만나면 출근에 앞서 대웅전을 찾는다. 집에서 증심사까지 차로 30여분 거리이건만 절에 갈 때는 기분이 날아갈 듯하다. 되돌아보니 불교학생회 때는 불교보다 좋은 친구, 선후배 만나는 것이 더 좋았다. 졸업 후 직장을 다니고 나이 들어 사업체를 운영하다보니 사람만나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만남이 스트레스로 다가올 때가 많다. 백운거사는 뒤늦게 불교의 진수를 알게 된 것이다. 108배를 하고 스님과의 차담은 삶을 살찌우는 시간이어서 소중하다.
“가족만 생각하며 살다가 봉사를 통해 주위에 많은 이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봉사를 하다 보니 하면 할수록 제가 더 행복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