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생애 1
해마다 음력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면서 부처님의 생애를 접할 기회가 많이 생긴다. 불자라면 불교 공부를 시작하면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부처님의 일대기를 알기 이전에 ‘석가모니 부처님이란 어떤 분인가?’ ‘지혜와 자비의 부처님’의 의미를 먼저 알고 시작하도록 하겠다.
무엇이 부처님일까? 불교를 처음으로 창시하신 분이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역사상 실존 인물로 우리 인간세계에 오셨다. 그러므로 부처님 생애에 대한 공부는 불교 교리의 시작이고 마음공부의 기준이 된다. 자타카나 불전에서 공통적으로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네 가지다. 룸비니 동산에서의 탄생, 보드가야에서의 깨달음, 녹야원에서의 최초 설법, 꾸시나가르에서의 열반이다. 인도의 4대 성지로도 알려져 있고, 불교의 중요한 연례행사들이기도 하다. 부처님의 생애에 있어 네 가지 중요한 사건들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룸비니 동산에서의 탄생이다. 부처님은 태어나자마자 일곱 발자국을 걸으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라고 크게 외쳤다고 한다. 처음 부처님의 생애를 접하는 불자들의 혼동이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상식적으로 이제 막 태어난 아기가 이렇게 했다는 것은 믿기지 않는다. 부처님의 전생담이나 경전을 읽을 때도 신화적이고 전설적인 내용이 많이 섞여 있다. 적절하게 상황에 따라 이해해야 하는데 처음 볼 때는 있는 그대로 믿어야 하는지, 혹은 비유적이나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인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는 구절은 워낙 유명한 구절이다.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는 표현인데, 이 내용을 오해하는 사람도 많다. 그다음 구절인 ‘삼계개고 아당안지(三界皆苦 我當安地), 삼계가 모두 괴로움이니 내가 마땅히 편안하게 하리라’라는 뜻을 같이 봐야 전체적으로 무슨 의미인지를 알 수 있다.
이 구절은 당시의 신 중심 인간관과 세계관을 부정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자아 중심의 세계관이 불교의 핵심임을 선언한 것이다. 이는 신 중심의 세계관인 타 종교와는 비교할 수 없는,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불법의 절대적 존엄성을 상징한다. 나아가서 우리는 이 선언을 통해서 이후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얻은 깨달음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짐작할 수도 있다. 그것은 진정한 자아 회복에 관한 선언에 다름 아니다.
두 번째, 부처님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정진하다 모든 번뇌가 사라지고 깨달음을 얻었다. 부처님의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불교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이며 어떻게 그것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상징한다. 우리가 부처님께 예불 드리고 참선하고 교리를 배우고 공부하고 정진하는 모든 것들은 부처님과 같이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의 과정이다.
세 번째는 초전법륜, 녹야원에서의 최초 설법이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으신 후, 녹야원에서 수행 동료였던 다섯 수행자들에게 최초의 법문을 하신다. 이것은 부처님이 당신의 깨달음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 말씀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 말씀의 내용은 사성제와 팔정도다. 사성제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이며 팔정도는 그 실천 방법이다. 이렇게 부처님의 깨달음과 부처님의 가르침(법) 그리고 제자들, 즉 불법승 삼보가 이루어진다.
네 번째, 부처님은 45년 동안의 전법 활동 후, 꾸시나가르에서 열반에 든다. 증일아함경 권28에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고 인간으로 성장하였으며 인간으로서 붓다를 이루었다.” 부처님은 신의 아들도 아니고 또 신이라고 주장한 일도 없다. 한 인간의 삶과 사상에서 불교와 같이 장대하고 깊이 있는 가르침이 시작된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불교 가르침에 귀의했던 모든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불교 사상과 실천을 통해서 한층 성숙한 안목으로 자신들의 인생을 바라보게 되었고, 수많은 구원과 신앙으로 보살상을 완성한 것이다.
시방세계에 두루 하신 부처님
절에 오면 많은 부처님이 계신다. 그래서 부처님은 신인지 인간인지, 부처님은 과연 몇 분이나 계신지 혼동이 올 수 있다. 석가모니란 석가족의 위대한 성자라는 뜻으로, 부처님을 인도말로 하면 붓다(Buddha)이다. 붓다란 ‘깨달은 자’를 뜻하는 말로, 단지 석가모니 부처님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에도 부처님이 계셨고 앞으로도 오실 것이라는, 깨달은 분이라는 의미로서 붙는 이름이다. 또 ‘여래’는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에 인도에서 사회적으로 위대한 사람들을 일컫는 고유명사로 인도 말로는 타타가타Tathagaha)라 한다. ‘그와 같이 오는 것’, ‘있는 그대로 오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있는 그대로’라는 말을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부처님은 인간세계에 오기 전 보살로서 많은 수행을 하고 현생에서 깨달음 얻었다. 이것은 부처님의 법은 시공간에 제약되어 있지 않고, 변함없이 중생제도를 목적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을 비롯한 여러 부처님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절에 오면 각 전각마다 여러 부처님들을 모시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처님과 법의 관계 : 삼신설(법신, 보신, 화신)
한편 불교 교리에서는 부처님과 법의 관계를 삼신설로 설명한다. 흔히 간단하게 비유를 들어 설명할 때는 달과 달빛과 물에 비친 달로 설명한다. 하늘에 떠 있는 원래 달이 법신이고, 그 달빛이 보신이고, 물에 비친 달의 모습을 화신이라고 말한다. 부처님의 몸은 법으로 되어 있다고 이야기 한다. 그런데 중생의 입장에서는 본래 부처님의 법 그 자체를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으므로 그 법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중생과 같은 모습으로 형상화했다는 이야기다.
법신이란 ‘법의 몸’이다. 법신이라고 할 때의 법은 진리 그 자체를 의미한다. 영원불변하고 유일한 그 법을 형상화시킨 것이 바로 비로전에 가면 볼 수 있는 비로자나 부처님이다. 보신이라고 하는 것은 무언가를 받는다는 뜻이다. 보신은 깨달음을 얻은 뒤에 깨달음을 위해서 끊임없이 정진했던 과보이며, 그 과보를 즐긴다는 의미다. 보살이 끝없는 세월 동안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으면 부처님이 된다.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서 성취하는 수많은 공덕들을 함유하고 있는 그러한 부처님이 바로 보신 부처님이다. 우리가 절에 왔을 때 보이는 비로자나 부처님이나 대일여래 부처님 말고 나머지는 모두 보신 부처님이다.
화신도 보신과 같이 본래 법신의 부처님이지만 중생제도를 위해 중생의 몸으로 바꾸어 직접 중생의 세계로 오신 부처님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바로 우리 인간의 몸을 빌려서 오신 부처님이다. 이렇듯 삼신을 제대로 이해하면 지금 현재의 내 모습은 지난날의 세월을 총집합한 과거의 모습이며, 그에 합당하게펼쳐지는 세상을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처님의 덕성 : 18불공법
부처님의 덕성을 표현할 때 18불공법이라는 말을 쓴다. 부처님은 10가지 지혜의 힘과 4가지 확신, 3가지 바른 마음자세, 그리고 중생을 어여삐 생각하고 구제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계신다는 뜻이다. 불공이란 함께 하지 아니한다는 의미로, 18불공법은 그 누구도 함께할 수 없는 18가지의 부처님만이 가지고 있는 법을 말한다.
부처님의 또 다른 이름
경전에서는 부처님을 불(佛)또는 붓다라고 표현하는데 그 외에도 많은 이름이 있다. 그 대표적인 호칭인 열 가지를 여래십호라고 하는데, 여래, 응공, 정변지, 명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사, 조어, 장부, 천인사, 불세존 등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만 설명하자면 응공은 응수공양, 마땅히 공양을 받을 수 있는 분이라는 뜻이다.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마땅히 공양을 받아야 될 분이다. 산스크리트어로는 아라하트라고, 한자로는 아라한 줄여서 나한이라고 부른다. 불세존은 부처님과 세존이라는 두가지 뜻을 함께 쓰는 경우다. (부처님의 생애는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