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법문

원통전에 불 밝히고

원통전에 연등을 달았습니다. 소대의 촛대 단을 새로 장만하는 등 소대 주변을 정비하고 나니, 새삼 원통전 주변이 삭막하게 보였습니다. 예전엔 미처 몰랐던 사실입니다. 가끔 느꼈다 할 지라도 가볍게 넘어가고 말 일이었습니다만, 주변 정비를 하고 나니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마침 초파일 기간에 원통전 주변으로도 등을 달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등을 단다면 법당에 등을 달듯 일 년 내내 달 것인지 전선 설치하는 업자분이 물었습니다. 전기 업자 입장에서는 잠깐만 다는 것이 아니라 일 년 내내 단다면 그에 맞게 설비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리가 있는 질문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원통전도 엄연한 전각인데 야외라는 이유만으로 초파일 기간에만 등을 단다는 것도 어불성설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야외에 1년 내내 등을 걸어둬도 괜찮을까 걱정되었습니다. 그래서 방수도
되고 내구성도 있으면서도 바람의 영향을 덜 받는 둥근 형태의 등을 촘촘하게 달아서 오랜 시간 견딜 수 있도록 하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실제로 3면으로 3줄 씩 달아보니 정확하게 108개의 등이 달렸습니다. 일부러 맞추려고 그리한 것도 아닌데 참 희안한 일입니다.

게다가 등을 설치하는데 비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었습니다. 봄철인데도 태풍을 방불케 하는 날씨였습니다. 덕분에 아무리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쳐도 별다른 문제가 없음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마당등은 떨어진 것들이 제법 있어서 다시 달았지만 원통전 연등은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지붕 아래에 있어 비도 들이치지 않고, 바람의 영향도 그다지 크지 않았습니다. 1년 동안 걸어두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원통전은 전각이기 때문에 다른 전각과 마찬가지로 예불할 때 연등의 불을 켜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다른 전각과 마찬가지로 하루 세 번 예불할 때에 맞춰서 연등불을 밝히기로 했습니다. 오늘 새벽에 처음으로 환하게 불이 들어온 원통전을 보았습니다. 환하게 빛나는 연등을 후광 삼아 관세음보살님이 서 계셨습니다. 마치 살아계신 듯 자비로운 미소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돌이라는 이유로, 밖에 계시다는 이유로 도량의 한갓진 구석에 있다는 이유로 관심은 커녕 눈길 한번 제대로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보살님은 그 자리에서 항상 자애로운 미소로 우리를 보살피고 계셨습니다.

돌이든 돌이 아니든, 금박을 했든 하지 않았든, 실내의 번듯한 법당이든 아니든 그런 것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 안의 신심입니다.


信爲道元功德母이요 長養一切諸善法이네
斷除疑網出愛流하여 開示涅槃無上道이네
믿음은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라는 말입니다.


믿음이 없다면 수행의 첫걸음을 내디딜 수 없습니다. 첫단추를 제대로 꿸 수 없습니다. 설령 첫걸음을 내디뎠다 하더라도 얼마 가지 않아 주저 않거나 돌아가거나 옆길로 새고야 맙니다. 믿음만이 우리를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등불이기에 도의 근원이라 하였습니다. 믿음을 견지하는 마음으로 수행하고 보시해야 그것이
진정으로 공덕이 되기 때문에 공덕의 어머니라 하였습니다.

오늘 새벽, 원통전의 관세음보살님은 제게 믿음의 빛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투박한 석상에 불과한 것이 어떤 이에게는 믿음을 복돋우는 관세음보살님입니다. 연등을 다는 작은 수고만으로 마음속에서 꺼져가던 믿음의 불씨가 다시 타올랐습니다. 이런 작은 수고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어디서라도 우리는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우리들이 원하는 소리로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 바로 관세음보살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관세음보살은 어디에 계신가요? 믿음이 가득 찬 내 마음이 바로 관세음보살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 하는 것은 바로 내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관세음보살의 마음으로 석상을 바라봅니다. 석상이 관세음보살인 것이지, 돌이 어떻게 보살님이 될 수 있겠습니까? 돌이 신통을 부리지 않는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오늘 새벽,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믿음을 굳건히 하고자 한 것도 내 마음이요,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눈이 멀어 욕망에 끌려다닌 것도 내 마음입니다. 중생도 내 마음이요, 관세음보살님도 내 마음입니다. 원통전의 관세음보살님은 돌로 만든 조각입니다. 학문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석조입상이지요. 그냥 돌입니다.

그러나 내가 관세음보살이면 원통전의 석조입상도 관세음보살이요, 내가 돌과 같은 미물이면 원통전의 관세음보살님도 한낱 돌 조각에 불과합니다. 관세음보살의 마음으로 석상을 바라보니 석상이 관세음보살인 것이지, 돌이 어떻게 보살님이 될 수 있겠습니까? 돌이 신통을 부리지 않는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당신은 돌로 살겠습니까? 관세음보살로 살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관세음보살의 삶, 관세음보살의 길을 갈 수 있겠습니까? 이미 답은 나와 있습니다. 작은 수고 하나라도 소홀히 하지 않는 마음을 잘 간직하는 것입니다.

중생심에 빠져 이랬다저랬다 변덕이 심할지라도 내 마음 밖에 든든한 등불을 하나 켜놓으면 그것으로 인해 이 마음을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작은 수고 하나가 내 마음을 붙잡아 주는 버팀목이 되고, 암흑 속에서 길을 비춰주는 등대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새벽 내 안에서 다시 믿음의 등불이 환하게 피어오른 것은 이른 새벽 환하게 빛나는 연등을 배경으로 서 계신 관세음보살 석조입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불자들이 초파일이면 연등을 달고, 법회 날이 되면 부처님 전에 예불을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 욕망하는 내 마음, 웃고 울고 화내고 슬퍼하는 내 마음을 믿지 말고 관세음보살님을 믿으십시오, 관세음보살을 존경하고 믿고 따르는 내 마음을 믿으십시오. 연등을 다는 간절한 내 마음을 믿으십시오, 부처님 전에서 머리 숙여 절하는 경건하고 신실한 내 마음을 믿으십시오. 그 마음이 바로 관세음보살님이십니다. 매일 매일이 내 안의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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