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불교 지명이야기

구례 사도리

옛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땅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통일신라말 선각국사 도선스님(827~898)이다. 풍수의 대가로 알려진 도선국사는 ‘땅은 기(氣)가 흐르는 생명체’로 여겼다.  침과 뜸으로 몸을 보호하듯, 땅도 기(氣)가 과한 곳은 사(瀉)해 주고, 허한 곳은 보(補)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비보풍수이다. 이 원리에 따라 나라 땅 곳곳에 사찰과 탑을 세웠다. 자생풍수의 근간을 이루는 비보사탑설(裨補寺塔說)이다.

고려를 건국한 태조왕건은 도선스님의 풍수 영향을 받아 통치에도 활용했다.

왕건이 후대에 남긴 <훈요10조>에서 ‘도선국사가 정한 곳 이외에 함부로 사원을 짓지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지리산을 감싸고 돌아가는 섬진강 변에는 도선국사가 비보풍수를 깨쳤다고 전하는 마을이 있다. 

구례 마산면 사도리(沙圖里)이다. ‘모래그림 마을’로 불리는 사도리에 관한 유래가 도선국사의 탑비인 <백계산옥룡사증시선각국사비명(白鷄山玉龍寺贈諡先覺國師碑銘)>에 전한다.

비문에 의하면 도선국사가 지리산 암자에 머물 때였다. 

하루는 백 살이 넘은 기인이 찾아와  “이것도 대보살이 세상을 구제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법이다”며 도선국사를 강가로 이끌었다. 기인은 강의 모래를 끌어 모아 산천을 그리고 홀연히 사라졌다. 도선국사는 모래 위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땅의 이치를 활연히 깨달았다. 이후 사람들은 이곳을 모래 위에 그림을 그린 마을, 사도촌(沙圖村)이라 불렀다. 당시 도선국사가 머물렀던 암자는 사성암이다. 네 분의 성인(원효, 의상, 도선, 진각)이 깨침을 얻었다고 전하는 구례 섬진강 옆 오산에 자리한 암자이다. 

도선국사가 산천의 이치를 깨쳤다는 구례 사도리는 지리산 노고단에서 화엄사 계곡을 따라 섬진강변에 자리한 마을이다. 마을이 커지면서 윗사둘, 아랫사둘로 나뉘어 부르다가 지금은 상사마을, 하사마을로 부른다. 

화엄사를 지나온 지리산 계곡은 마산천을 이루고 섬진강으로 흘러간다. 도선국사가 모래그림을 보고 땅의 이치를 깨달은 곳은 마산천과 섬진강이 만나는 지역으로 하사마을 앞이다. 도선국사 비문 기록에서 나타나듯이 사도리는 천년 명품고을이다. 오랜 역사를 보여주듯 마을입구에 세워진 효자비가 여럿 눈길을 끈다. 특히 상사마을은 1986년 인구 통계조사에서 전국 제1의 장수 마을로 알려졌다. 주민들은 상사마을 입구에 있는 당몰샘의 물을 장수의 비결로 여긴다. 지리산의 수많은 약초가 뿜어낸 물이니 그럴만도 하다. 

요즘은 당몰샘보다 옆에 있는 해주오씨 고택 쌍산재가 더 유명하다. 쌍산재는 한국전통정원의 아름다움이 인정되어 ‘전남 제5호 민간정원’으로 지정되었다. 몇해전 TV에 방영된 윤스테이 촬영지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다.

Related Article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Back to top bu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