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과 차한잔

절에서 제사 지내는 이유

우리 사회에서 제사(祭祀)는 유교적 전통의 전유물, 조상을 모시는 의식이라는 인식이 매우 강하다. 그런데 절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하니 의아한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제사의 정의를 살펴보면, “천지신명을 비롯한 신령이나 죽은 이의 넋에게 제물(음식)을 바치어 정성을 표하는 행위” 라고 나와있다. 좁게는 천지신명에게 올리는 정성이며, 넓게는 샤머니즘 및 조상숭배, 애니미즘 등과 관련하여 제물을 바치는 의식 전반을 지칭한다. 다만 고려말 이후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유교가 도입되어 가족이 모이고 조상들을 기억하는 의례로 바뀌게 되었을 뿐이다.

불교가 탄생한 인도의 경우, 힌두교는 ‘스랏다’라는 제사 의식을 행한다. 이는 주로 성화를 피운 제단을 차리고, 곡물, 음식, 소마 등을 제물로 바쳐 태우며, 베다의 만트라를 낭송하는 절차로 진행된다. 불을 통해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 인간의 뜻이 신들의 세계로 전달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이런 의식의 목적은 단순히 신을 찬양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인 복을 기원하는 의미가 강하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제천문화는 단군조선을 시작으로 부여의 영고(迎鼓), 동예의 무천(舞天), 고구려의 동맹(東盟), 신라의 신궁제사(神宮祭祀), 고려의 팔관회(八關會)로 계승되었다. 이때까지는 나라가 주관하였으나 조선이 중국에 조공하고 유교를 지배이념으로 채택하면서 천제문화는 끊겼다. 이처럼 조상을 모시는 유교식 제사는 제사의 일부일 뿐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유교적 제사의 중요성은 급속히 퇴색하고 있다. 그렇다고 제사 문화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제사가 허례허식이고 번거롭다고 생각하지만 제사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다만, 유교적 의미의 제사가 빛을 바랬을 뿐 본래적 의미의 제사는 여전이 중생들의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최근 들어 제사를 합치거나, 다른 가족이 모시거나 아니면 절에서 모시는 등의 현상들이 자주 보이는 것이다. 유교의 사상에 따르자면, 살아있는 가장 가까운 조상인 부모나 조부모에게 감사하고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 효도이고, 돌아가신 조상을 숭배하고 보답하는 것이 제사이다.

유교에서 제사를 올리는 본뜻은 원시보본(原始報本), 즉 처음을 찾아서 뿌리에 보답하는 것이다. 유교는 유교 나름의 사상에 입각해서 제사를 해석하고 유교식 제사의 논리와 근거를 세웠다. 이러한 생각이 조선시대 이후 우리 민족들에게 뿌리깊게 내려와,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한편으로는 허례허식이라고 폄하하면서도 여전히 제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은 바로 이러한 유교적 이데올로기가 우리들 마음 속에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제사를 재(齋)라고 표현한다. ‘재’는 몸과 말과 생각으로 지은 세 가지 업을 맑게 하여 악업을 짓지 않겠다는 다짐의 뜻으로 삼보께 공양을 올리고 귀의하는 의식이다.

유교가 제사의 의미를 원시보본에 두었다면, 영가님들에게 재를 베풀어 영가님들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려는 것이 불교에서 재를 지내는 이유이다. 유교든 불교든 산 사람이 안락과 행복을 누리고자 하는 것을 제사의 목적으로 두지 않았다. 비록 제사의 출발은 그러했을지라도, 사람들은 제사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승화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집에서 지내는 제사는 비록 번거롭고 힘들지만 조상님을 섬긴다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고, 절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개인과 가족 친지의 안락과 행복을 위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절에서 제사 지내기를 못마땅하게 여길 수 있다. 그리고 많은 불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유교식 제사를 지내는 것을 전혀 어색하게 여기지 않고 있다.

하지만 문화적인 정서는 유교식을 따르면서 가치관이 불교적이라면 마음 속에서 충돌이 일어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불자라면 제사보다 재를 지낸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 나와 우리 가족만 위하는 것 같은 죄책감과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불필요한 갈등에 사로잡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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