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0]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라는 생각이 들 때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살다 보면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길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평소에 건강했는데 갑자기 큰 병에 걸렸다던가 아무 잘못 없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던가 하는 경우에 한탄 섞인 마음과 함께 드는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은 정말 그 이유가 궁금하다기 보다는 그 상황이 납득되지 않고 화가 나는 경우에 생깁니다.
자기계발 장르에서 가장 흔하게 하는 말이 “인생의 조연이 되지 말고 주연이 되어라!”라는 것입니다. 사회가 그것을 조장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라는 생각도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겨납니다.
그러나 과연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인지 잘 생각해봅시다. 내가 이 세계의 주인공이라면 모든 것을 마음 대로 할 수 있어야 마땅한데, 세상 일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지는 해를 지지 못하게 한다거나, 대통령을 바꾼다거나, 나에게 일어날 사고를 일어나지 못하게 막을 수가 없습니다. 단지 점심에 뭘 먹을 것인지, 잠을 몇 시에 잘 것인지, 청소를 어떻게 할 것인지 하는 일상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는 생활에 익숙하다 보니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내 마음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착각 속에 살다가 예상치 못한 충격이 들어오면 분노하게 됩니다. 내가 주인공인데 나의 통제의 범위를 넘어선 일이 생기니 납득이 되지 않는 겁니다. 이것은 중생이라면 당연하게 여기는 생각입니다.
서사적인 나와 체화된 나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라고 할 때, 그 근거는 무엇입니까? 일상이 나를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했고, 무엇을 봤고, 무엇을 들었고,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그 이야기들의 주인공은 모두 나입니다. 이렇게 기억 속에 항상 주인공이었던 ‘나’를‘서사적인 나’라고 표현합니다.
문제는 서사적인 나는 혼자 있어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빛도 소리도 없는 암흑과 같은 우주 한 공간에 내가 자리하고 있다면 ‘나’라는 개념을 확인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내가 있다’는 생각은 비교에서 나옵니다. 저기에 산이 있고 여기에 물이 있고 옆에 다른 사람이 있어야, 그것과 대비되는 ‘나’라는 게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예요. 이것을 ‘체화된 나’라고 이야기합니다.
기억 속의 나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어마어마한 스토리들, 즉 서사적인 나와 지금 현실 속에 있는 체화된 나를 합쳐서 ‘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머릿속에 각인된 내가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충격에 의해서 그 생각이 흔들리게 되면 그 상황을 용납할 수없고, 용납할 수 없으니 분노가 솟아나옵니다. 그런데 대책이 없습니다.
결국 근본 문제는 우리 내부에 있습니다. 불교적으로 말하자면, 있지도 않은 내가 있다는 뿌리 깊은 착각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나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충격적인 일’이나 ‘납득이 안 되는 일’이지만 부처님의 인연법을 놓고 보면 그야말로 얽히고 설킨 인과 연들에 의해서 나타난 현상일 뿐입니다. 나 역시 그 복잡한 인연의 실타래 속의 한 가닥 실일 뿐이지요.
나를 구하는 건 오직 나의 정진 뿐
연기법을 이야기 할 때 어떤 결과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나 단독의 힘이 아니라 인연, 연연, 차제연, 증상연이라는 네 가지 종류의 연이작동합니다. 인연은 원인에서 결과가 나오는 것, 연연은 감각기관과 지각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 차제연은 앞 찰나의 생각이 다음 찰나의 생각에 영향을 주면서 마치 강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이어지는 것, 증상연은 씨앗 이외에도 흙과 물과 비료 등 씨앗을 제외한 조건들이 작용하여 싹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내가 내 일상의 중요한 축이기기는 하지만, 내가 알거나 모르는 다양한 변수들이 함께 작용하여 굴러가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그러니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은 사실 잘못된 것이지요. 즉 ‘나’도 하나의 조건이지만 내가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하는 수많은 조건들이 그물처럼 얽히고 설켜 하나의 결과로 나타납니다.
잘못된 견해에서 발생하는 부정적인 감정에서 수월하게 벗어나기 위해서는 평소에 마음을 훈련시켜 두어야 합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를매일 외운다던가, 천수경을 독송한다던가, 108배를 한다던가, 하다 못해 산책을 하면서 명상하는 시간이라도. 무엇이든 좋습니다. 정진의힘으로 수행에 습관을 들여 놓으면 보통 이상의 힘든 일이 닥쳤을 때에도 나 혼자 힘으로 수렁에서 헤어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수행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깨달음을 얻어서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는 것이지만, 수행은 궁극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힘을 발휘합니다. 인생이 고달플 때 나를 위로해주는 것, 그것은 매일 하는 나의 수행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