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과 차한잔

[26-08] 출가, 속세를 떠난다는 것

오늘은 ‘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스님이라는 존재가 일반인들과 분리되어 있는 특별한 집단으로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스님들은 태어날 때부터 스님으로 태어난 게 아니라, 인생의 어느 순간 출가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스님이라는 정체성을 새롭게 세팅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나 싶은데요. 

흔히 스님을 표현할 때 흔히 ‘속세를 떠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속세란 무엇이고 속세를 떠난, 탈속세란 무엇인가요?

일상적으로 ‘속세’는 세속적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말인데 사실 불교 용어는 아닙니다. 불교에서는 속세를 ‘사바세계’라고 표현합니다. 사바세계는 예토 즉 참고 견뎌야 하는 세계를 의미합니다. 우리 중생들은 뭔가 괴로움을 참고 견디는 사바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이지요. 속세를 떠난다는 표현을 했는데, 잘 구별해야 하는 것이 스님들은 사바세계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출가하는 겁니다. 말 그대로 집을 나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출가라는 말의 의미를 조금 더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겠네요.

출가는 가족과 이별하는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꼭 불교만 그런 것이 아니고 수행을 하는 사람들은 출가를 하면 삭발을 했습니다. 인도의 풍습 중에서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머리를 깎는 것이 있는데요. 수행자는 부모님이 멀쩡히 살아 계시더라도 가족과의 인연을 완전히 끊겠다는 의사 표시로 머리를 깎았습니다. 이것은 비단 가족과의 인연만이 아닙니다. 내가 속해 있는 마을공동체와 인연을 끊고, 경제활동을 통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의무와도 단절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가족을 떠난 스님들은 엄격한 의미로 가족들을 전혀 만나지 않는 건가요?

2500년 전 부처님 당시는 지금처럼 풍요로운 사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경제생활과 수행을 동시에 할 수 없었습니다. 가족을 먹여 살리고 농사를 짓는 일을 하면서는 도저히 수행을 할 시간을 낼 수 없었기 때문에 양자 결단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수행에만 전념할 것인지 아니면 가장으로서의 의무나 가족과의 인연 등 사회적인 모든 역할을 포기할 것인지 말입니다. 말하자면 ‘나는 이 사회에 없는 사람이니 가장의 의무를 지우지 마’라고 선언하면서 출가한 사람이 다시 가족과 만날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지 않았겠죠. 현대 사회에서는 가족을 만나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현실적 이유는 없지만, 승가 공동체 안에서 스님으로 역할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일반 사회와 멀어지게 되고 그 안에서 가족을 만날 일은 사실상 잘 없게 됩니다. 

스님들은 출가를 하면 속세에서 쓰던 이름 대신 불가의 이름인 법명을 새로 받습니다. 법명은 주로 두 글자인데요. 가끔 책이나 sns에서 스님들의 이름을 보면 “석 OO” 하는 식으로 법명 앞에 ‘석’이라는 성을 쓰는 것을 봅니다. 스님들의 성씨는 석 씨로 통일하는 건가요?

그것은 대만에서 전래한 문화입니다. 대만 불교는 우리나라와는 좀 달라서 스님이 되면 호적도 바꿀 수 있다고 그래요. 호적을 바꾸자면 이름이 들어가야 하지 않습니까? 이때 석가모니 부처님의 성을 따서 석 자를 성씨로 쓰는 것이 관행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해방 이후에는 스님 법명에 속가 성을 쓰기도 했는데, 후에 대만불교를 접한 스님들이 늘어가면서 이러한 문화를 차용한 경우가 있는 겁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왕자 출신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요. 부처님은 왕자 시절 아내와 아들을 둔 후에 출가를 하셨습니다. 또한 출가하여 깨달음을 이룬 후 부처님이 고향에 돌아가 한 일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던 가족, 일가 친척들에게 출가를 권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부처님은 깨달으신 분입니다. 깨달은 분의 경지에서는 가족과의 인연, 자식과의 인연에 대한 생각이 우리와는 좀 달랐을 겁니다. 부처님이 생각하기에 ‘어떻게 하면 저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했을 때, 출가해서 수행하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본 것이지요. 

다만 그때의 시대상이 현대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출가를 하지 않으면 수행하기가 힘든 시대였다는 점을 말입니다. 부처님이 볼 때는 출가를 해서 깨닫는 것이 가장 큰 행복으로 가는 길인데, 깨달으려면 수행을 해야 하고 수행하려면 출가를 해야 하니 너희들도 출가를 하라고 한 것이지요. 

수행하는 것이 세속적인 행복, 가족과의 행복보다 크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사실은 관점의 문제입니다. 사람마다 가치에 대한 관점이 다른데, 예를 들면 “나는 돈이 최고야” 하는 사람에게 “아니야, 수행이 최고야”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을 겁니다. 이것은 본인이 수행을 하면서 직접 경험을 하고 삶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느낄 문제이지, 어떤 삶이 더 가치 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가치가 있다 없다는 것은 주관적인 것이니까요. 

다만 부처님은 수행자뿐만 아니라 일반인(재가자)들에게도 법문을 많이 하셨는데요. 계를 지키고 공덕을 쌓으라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지혜가 밝아져야 하고 밝아지려면 마음이 고요하게 가라앉아 거울처럼 깨끗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내가 생각해도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 없는 일상을 살아야 합니다. 계를 지키고 공덕을 쌓는 것은 이런 일의 바탕이 됩니다. 단지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수행의 기초를 다지는 일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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