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법문

[26-09] 인연법과 가까워지기

바람의 노래

노래. 조용필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세월 가면 그때는 알게 될까

꽃이 지는 이유를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아야 해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국어사전에서 정의하는 인연은 ‘사람들 사이에 연분 또는 사람이 어떤 상황이나 일과 맺어지는 관계’입니다. 일상에서 인연이라는 말을쓸 때는 일정한 시간 동안 관계를 지속하는 정도의 사람과의 관계 맺음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냥 ‘관계를 맺는다’ 정도의 표현이 아니라굳이 ‘인연’이라는 말을 쓰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인연은 엄밀하게 따지면 불교의 용어입니다. 인연생기(因緣生起), 연기법의 다른 말이지요. 인연생기란 인과 연이 합쳐지고 만나서발생하고 일어나는 이치를 의미합니다. 일상에서 인연이라는 말을 흔하게 사용하지만, 인연이라는 말은 동시에 부처님 가르침의 가장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연기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상에서 인연이라는 말을 쓸 때에는 서로 간에 관계를 맺는다는 본래적 의미에 그치지 않고 다소 감정적인 요소가 첨가됩니다. ‘그냥 관계를 맺고 사는 사이’가 아니라 ‘저 사람하고 나하고 쌓인 정이 있다’는 의미가 들어가지요. 고운 정이든 미운 정이든 서로 정을주고 받는 관계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연의 네 가지 종류: 인연, 연연, 차제연, 증상연

인연은 조건들이 결합해서 결과가 생기는 것입니다. 때의 조건을 ‘연’이라고 말하는데, 불교에서는 연을 네 가지 종류로 나눕니다. 가장대표적으로 쓰이는 것이 인연(因緣), 두 번째는 연연(緣緣), 세 번째는 차제연(次第緣), 네 번째는 증상연(增上緣)입니다. 

인연은 인과 연을 합한 말입니다. 인은 직접적인 원인, 연은 결과입니다. 예를 들어 씨앗을 심으면 나중에 싹이 나오지요. 싹은 결과, 씨앗은 원인에 해당합니다. 어떤 원인이 다른 조건과 만나서 결과를 만들어낼 때를 인연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연연은 조건이 구비되어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무언가를 보려면 보려는 대상도 있어야 하고 보는 나도 있어야 하고보는 활동도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소리와 빛 같은 것들도 포함됩니다. 지각 활동을 할 때 무언가를 보고 듣고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여러가지 조건들을 연연이라고 표현합니다. 

차제연이란 순서에 따라 영향을 주는 연입니다. 생각이란 것이 실체가 있어서 쭉 하나의 생각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찰나 찰나마다생각이 생겼다 사라지되, 바로 앞의 생각이 그 다음 생각을 일으키는 조건이 되어 영향을 미치는 것이지요. 한 생각이 다음 생각에 영향을주는 것을 차제연이라고 하고, 이것은 불교에서 상당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증상연은 결과가 나타나기까지 크든 작든 조건으로써 영향을 미치는 것들입니다. 예를 들어 씨앗을 심었다고 해서 무조건 싹이 나는 것은아니지요. 씨앗은 인이고 싹은 연이되,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물, 토양, 햇빛, 바람, 영양분 같이 씨앗 외에 필요한 다른 조건들도 많습니다. 싹이 하나의 결과라면 싹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조건으로써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 것. 이것이 증상연입니다. 

네가 없으면 나도 없다.

노래로 돌아가봅시다. 나는 여기에 가만히 있는데 인연이 나에게 왔다가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두가 독단적인 ‘나’의 입장이라면스치고 지나가는 인연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연은 나만 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너만 있다고 해서되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없으면 너도 없고 네가 없으면 나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맞고 뒤로도 맞아야 합니다. 

부처님이 이야기하는 연기법이란 내가 홀로 있고 너는 바람처럼 스쳐간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내가 없으면 너도 없고 네가 없으면 나도없는 연기적 관계로 얽혀 있습니다. 우리들 각자는 마치 가느다란 실 같은 존재이고, 이 실들을 엮어서 굵은 실을 만들기도 하고 굵은 실을엮어서 더 긴 줄을 만들고 그것들을 엮어서 커다란 동아줄을 만드는 겁니다. 

이어서 조용필은 노래합니다. 오늘도 그럭저럭 살고 내일도 그럭저럭 사는 것만 할 수 있지, 이 세상의 이치 같은 것은 나의 지혜로 알 수없다고 말입니다. 스스로 세상의 지혜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먼저 이 세상의 지혜를 밝힌 이가 어떻게 이야기하는가를 보고, 그 이야기를숙고하여 나의 것으로 만들면 됩니다. 부처님은 사성제를 통해 세상의 이치를 이미 밝혀 놓았습니다. 이 노래를 만든 사람이 ‘나의 작은지혜로는 알 수가 없다’고 한 것. 그 정답이 바로 사성제입니다. 

인생이 실패와 고뇌의 연속으로 이어지는 것은 사성제라고 하는 세상의 이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고, 삶의 기준으로세울 수 있는 계율을 제대로 알거나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내가 원한 것이 아닌 무명, 실패와 고민과 번뇌가 계속 이어집니다. 이 노래가 불법을 완전히 녹여내지는 않았으나 평범한 중생들이 생각하는 인생의 이치를 잘 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번 더 생각해볼 수 있는 요소들을 충분히 갖고 있습니다. 이 가을날, 노랫말을 듣고 감상에 젖어 스스로 번민을 일으키기보다는 좋은 기회로 불법을 실천하는 시간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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