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해설

[26-10] 참선곡 4

허튼소리 우스개로 이날 저날 헛보내고

늙는 줄을 망각하니 무슨 공부 하여볼까

죽을 제 고통 중에 후회한들 무엇하리

사지백절(四肢百節) 오려내고 머릿골을 쪼개낸 듯

오장육부 타는 중에 앞길이 캄캄하니

한심참혹(寒心慘酷) 내 노릇이 이럴 줄을 누가 알꼬

저 지옥과 저 축생(畜生)의 나의 신세 참혹하다

백천만겁 차타(蹉跎)하여

다시 인신(人身) 망연(茫然)하다

참선 잘한 저 도인은 서서 죽고 앉아 죽고

앓도 않고 선세(蟬蜕)하며

오래 살고 곧 죽기를 마음대로 자재하며

항하사수(恒河沙數) 신통묘용(神通妙用)

임의쾌락(任意快樂) 소요(消遙)하니

아무쪼록 이 세상에 눈코를 쥐어뜯고

부지런히 하여보세

오늘 내일 가는 것이 죽을 날에 당도하니

푸주(抱廚)간에 가는 소가 자욱자욱 사지(死地)로세

오늘 강의의 핵심은 이렇다. 지금 살아있을 때는 모르지만 죽을 때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아느냐, 그것을 안다면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아닌 것들 중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것은 음식이라고 한다. 생명이 아니라 음식으로 여긴다. 예를 들어 마트에서 파는 생선을 떠올려보자. 머리, 꼬리, 지느러미를 모두 떼어내고서 조리하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상태로 판매한다. 매대 위의 생선 토막을 보면 이것이 물속에서 파닥파닥 살아서 헤엄쳤던 물고기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그런데 어릴 적 집에서 생선을 먹을 때는 어땠나? 어머니나 할머니가 칼로 생선 대가리를 단번에 쳐내고 요리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 장면을 보는 충격도 상당히 컸었고 말이다. 

이렇게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 아닌 생명체는 우리와 똑같은 생명이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그런데 만약 인간보다 더욱 고등한 생명체가 있어서 인간을 음식으로 섭취한다고 가정하면 어떨까? 그 생명체는 우리가 돼지나 소, 생선을 요리하듯 인간을 손질할 것이다. 몸을 토막내고 내장을 제거하고 뼈를 발라내고 살점을 먹을 것이다. 마치 인간이 인간 아닌 생명체를 요리 재료로만 다루듯, 우리도 그들에게는 다른 생명 있는 것들과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이처럼 죽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참선곡에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사지백절(四肢百節) 오려내고 머릿골을 쪼개낸 듯

오장육부 타는 중에 앞길이 캄캄하니

죽을 때는 팔과 다리가 백 마디로 쪼개지고 머릿골이 쪼개지고 오장육부가 타들어간다는 것이다. 생선을 먹을 때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손질한 생선을 굽는다. 생선 입장에서는 오장육부가 타는 것이나 다름 없다. 마치 인간보다 월등히 뛰어난 존재가 인간을 그렇게 조리하는 것 같은, 그런 고통이 우리가 죽을 때 우리 앞에 닥친다는 말이다. 

우리가 죽으면, 우리의 몸은 죽는 순간부터 썩고 부패하고 진물이 나오고 벌레가 좀먹는다. 고통 속에서 변해가는 것이 몸이라는 이야기를 경허스님이 강조하고 있다. 

백천만겁 차타(蹉跎)하여 다시 인신(人身) 망연(茫然)하다

백천만겁 차타한다는 것은 한번 어긋나서 그릇되면 백천만겁으로 차이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생에 한 생각 어긋나면 나중에는 다시 사람의 몸을 받을 길이 막연하다. 길을 잘못 들었을 때, 처음에는 5분만 돌아오면 되지만 1년, 2년이 지난 후에는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것과 같다. 내가 걷고 있는 길이 맞는 길인지 잘 못 든 길인지를 잘 알아야 한다. 

참선 잘한 저 도인은 서서 죽고 앉아 죽고 앓도 않고 선세(蟬蜕)하며

선어록이나 조사어록에 보면 참선을 열심히 하신 스님들은 서거나 앉아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고통 없이 죽는다. 실제 참선을 열심히 하면 육체적인 고통이 없이 죽을까? 그것은 확인할 바가 없지만 미루어 생각하기에는 육체적인 고통을 정신적인 고통으로까지 이어가지 않는다는 맥락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몸이 아프다고 해서 마음까지 아프면 정말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육체의 고통을 단지 육체의 고통으로만 받아들인다면 육체의 고통에서 끝나는 것이다. 마치 매미가 허물에서 쏙 빠져나와 날아가듯이 깨끗하게 갈 수 있다. 

항하사수(恒河沙數) 신통묘용(神通妙用) 임의쾌락(任意快樂) 소요(消遙)하니

아무쪼록 이 세상에 눈코를 쥐어뜯고 부지런히 하여보세

항하사수는 인도의 갠지스강을 말한다. 참선을 열심히 하면 나고 죽는 데에 얽매이지 않아, 살 때에도 번뇌나 고통에 얽매이지 않고 유유하게 자적한다.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눈코를 쥐어뜯는 심정으로 부지런히 정진하여야 한다.  

참선곡은 어려운 이야기가 전혀 아니다. 지금은 죽음의 고통을 모르지만, 죽을 때의 고통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안다면 살아있을 때 열심히 공부해야만 참선 잘 한 도인처럼 고통 없이 다음 몸을 받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오늘 내일 가는 것이 죽을 날에 당도하니 푸주(抱廚)간에 가는 소가 자욱자욱 사지(死地)로세

마지막 문장은 우리의 삶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바로 우리 인간의 신세이다. 우리의 발자국 하나하나는 사지로 가고 있다. 일상이라는 발자국은 하나하나가 곧 죽음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것을 부디 명심하여 열심히 참선을 하라는 이야기를 경허스님은 하고 있다. 

어떻게 참선을 하는가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을 꾸준히 행하는 것다. 사람 마음이 그다지 튼튼하지 못해 유혹에 흔들릴 때가 많다. 나태하거나 해이해지거나 다른 일로 마음이 바쁠 때에 이러한 게송을 바탕으로 마음을 잘 다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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