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7] 참선곡 1

경허스님은 조선 후기에 태어나 임진왜란 이후 쇠락해가던 불교 수행전통에 다시금 불을 지핀 근현대 한국불교의 중흥조다. 참선곡은 경허스님이 지은 노랫말로, 간화선의 전통이 사그라지던 때에 쉬운 언어로써 참선을 설명하여 많은 이들에게 불교의 가르침을 전파했다.
“홀연히 생각하니 도시몽중(都是夢中)이로다.” 수행을 하려면 계기와 동기가 있어야 한다. 아무 일도 없는데 불교공부를 하라고 하니 마지못해 하는 것은 수행이 아니다. 첫 구절에서 경허스님은 ‘중생들이 참선을 열심히 해야지만 부처가 될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한 후 중생들에게 참선을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삶이 꿈과 같지 않느냐?’, ‘사는 것이 허무하지 않은가?’, ‘인생이라는 것이 하룻밤 새 사라져버리는 꿈과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가?’ 우리의 삶이 무상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면, 회의가 들고 의문이 든 적이 있다면 당신은 부처님 공부를 할 마음의 준비가 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천만고(千萬古) 영웅호걸 북망산 무덤이요.” 유비, 관우, 진시황 등 제아무리 시대를 호령한 영웅호걸이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죽어서 무덤으로 간다. 이렇듯 역사에 이름을 남긴 대단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죽어서 무덤에 묻히는데 우리 같은 중생들이야 더 말할 것이 있을까. 북망산은 당나라 시대의 수도인 장안에서 마차로 하루 거리에 있는 산이자 공동묘지다. 당대의 사람들은 북망산 하면 무덤을 떠올렸다고 한다. 참선곡에서 무덤의 상징으로 북망산을 지칭한 것은 조선시대에 남아있던 사대주의 정신의 잔재이기도 하다.
“부귀문장(富貴文章) 쓸데없다, 황천객을 면할쏘냐.” ‘살아서는 부귀요 죽어서는 문장’이라는 옛말이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듯, 살아서는 부와 명예를 누리는 것이 최고이나 죽어서는 그가 살아있을 때 남긴 글, 문장이 최고라는 뜻이다. 그러나 살아서 부귀하고 죽어서 탁월한 문장을 남겼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황천에 가는 객 신세를 면할 수가 없다. 경허스님은 왜 참선을 이야기한다면서 생사의 일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일까?
“오호라! 나의 몸이 풀끝에 이슬이요, 바람속의 등불이라.” 이슬은 해가 뜨기 전에 맺히고 해가 뜨면 한순간에 증발한다. 잠시 있다 사라지는 것이 풀끝의 이슬이고, 바람이 불면 꺼져버리는 것이 등불이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엄청 길다고 느낄 뿐, 실은 아침이슬이나 바람 속의 등불만도 못하다는 것을 모른다. 이 사실을 모르면 참선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런데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러한 사실을 절감할 때가 온다. ‘나도 언젠가는 죽는구나.’,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언제 죽을지 모르겠구나.’, ‘세상 사는 것이 참 덧없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 참선공부를 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자기 삶에 대한 간절함과 함께 무상함, 공허함을 항상 마음에 두기 위해서 경전을 보고 기도를 하고 예불을 드리는 것이다.
“삼계대사(三界大師) 부처님이 정령(丁寧)히 이르사대 마음깨쳐 성불하여 생사윤회 영단(永斷)하고 불생불멸 저 국토에 상락아정(常樂我淨) 무위도(無爲道)를 사람마다 다 할 줄로 팔만장교 유전(遺傳)이라.”
참선공부를 하는 이유는 부처가 되기 위해서이다. 중생심과 번뇌에 젖어 있는 마음을 깨치면 부처가 된다. 알고 보니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으며 내가 바로 부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운동을 한다든가 체력단련을 해서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만 깨치는 것, 마음만 바꾸는 것, 한 생각 돌리는 것이 부처가 되는 길이다.
부처가 되면 어떤 이득을 얻는지를 이어서 말한다. 태어나고 죽는 윤회가 영원히 끊어진다. 불교에서는 지금 한 번 생만 사는 것이 아니라 윤회를 한다고 이야기한다. 지금 이 생의 삶이 고통스럽고 힘들다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전생과 그 전생에도 고통스럽고 힘든 삶을 살았을 것이고, 이어지는 다음 생에도 고통스럽게 살 것이다. 부처가 되면 윤회를 더 이상 하지 않는 이득이 생기니, 윤회를 하지 않고 고통스러운 삶을 끝내기 위해서는 부처가 되어야 한다.
상락아정의 한 글자 한 글자는 부처님의 경지를 표현하고 있다. 상(常)은 모든 것이 나고 멸하는 가운데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락(樂)은 좋았다가 나빴다가 하는 번뇌를 벗어난 즐거움이다. 아(我)는 지금의 나, 거짓된 나, 번뇌 속에서 헤매는 나, 어떤 때는 자존심이 높았다가 어떤 때는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나, 이러한 내가 아닌, 너와 나의 구별이 없는 참 나를 말한다. 이러한 마음상태는 정청하고 고요하다. 이것이 정(淨)이며, 위의 네 가지가 부처의 경지이다. 이렇게 참선곡의 서론에서는 부처가 되어야 하는 이유와 그 이득을 설명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