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시장
서방으로 10만 억 국토를 건너면 ‘극락’ 광주 북구 29번 국도 동문대로는 호남고속도로 동광주 IC로 진입하는 큰 도로이다. 역참제도가 있었던 조선시대에는 경양역이 있었던 곳으로 담양, 곡성, 순창, 나주 등 사방으로 통하는 관문이기도 하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장마당이 열리기 마련이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이기 좋은 길목이기에 경양역 부근에 시장이 열렸다. 오늘의 말바우시장과 서방시장의 시작이다. 동문대로 서방사거리에 자리한 서방시장은 1966년경 광주에서 최초로 ‘싸전’이 문을 열면서 오늘의 시장 모습을 갖췄다. 싸전은 시장에서 쌀과 곡식을 파는 가게로 담양, 곡성, 화순, 함평, 순창 등 인근 지역의 미곡상이 모였던 것이다.
미곡이 정부의 양곡허가 제도 하에 있었던 1970년대 서방시장은 호황기를 맞았다. 당시 시장 주변은 허허벌판이었지만 판자촌 같은 천막 형태의 미곡상 32곳과 이들을 중개하는 업소 10여 곳, 그리고 제철에 나오는 채소나 과일, 어물 등을 파는 60여점의 점포가 자리한 2천 평 규모의 큰 시장이었다. 근래 들어서는 인근지역이 공동화 되면서 상권이 예전만 못하다.
서방시장은 오늘의 북구 지역으로 1914년 광주군으로 인근지역의 면을 통합할 때 서방면이었다. 광주 읍성과 경양역에서 보면 북서쪽에 위치해 있다. 서방면은 극락으로 불리는 서방(西方)정토에서 유래됐다. 서쪽에 자리한 정토는 아미타부처님이 상주하는 극락세계로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곳이다. 빛고을 광주는 극락강을 따라 극락으로 가는 서쪽 길목에 서방면이 있었던 것이다.
서쪽의 정토, 극락은 인도의 방위와 시간관에서 유래한다. 인도인들은 더위를 피해 남쪽보다 동쪽을 선호한다.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칠 때도 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지금도 인도에서는 동쪽을 바라보고 앞쪽을 과거, 뒤쪽을 미래로 여긴다. 그래서 그들은 극락을 내세에 꼭 태어나야 하는 안락한 세계이며, 그것은 서방에 존재한다고 여긴다. 그렇다면 서방으로 얼마나 가야 극락에 갈 수 있을까?
<아미타경>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바세계에서 서쪽으로 십만 억 국토를 지나야 갈 수 있다고 했다. 경전을 한역으로 번역하던 중국인들은 최대 숫자가 ‘억’으로 먼 거리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불교에서 극락으로 가는 운송 수단으로 반야용선이 있다. 인로왕보살이 이끌고, 지장보살, 관세음보살의 호위를 받으며 극락으로 가는 반야용선은 서쪽으로 향해간다. 광주광역시 청사가 물 위에 떠 있는 ‘배’ 형상이다. 그것도 서쪽을 향하고 있다. 광주시청 청사의 모양새가 거친 파도를 헤치고 극락을 향해 가고 있는 반야용선인 것이다.
몇 해 전, 서방시장이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른 일이 있었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조직 폭력배 ‘서방파’가 뉴스에 오르내린 것이다. 서방파를 이끌던 이가 서방시장에서 한 주먹 했고, 서울로 진출해 전국구가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