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법문

부처님께서이 땅에 오신 뜻은?

불기 2567년 부처님 오신날 봉축사(2023. 5. 30.)

올해는 부처님께서 열반하신지 2567년째 되는 해이자, 우리 곁에 오신지 2647년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카필라국의 왕비 마야부인은 출산을 위해 친정으로 돌아가던 중, 룸비니 동산에서 아이를 출산하였습니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은 뒤, 한 손으로는 하늘을, 또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

이제 갓 태어난 신생아가 일곱걸음을 걸었다는 것도 말이 안되는데, 이렇게 어려운 말을 했다는 것은 더더욱 믿기 어렵습니다. 부처님의 탄생설화를 액면 그대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이것은 불교의 전법 선언입니다. 이 사바세계 속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펴나가겠다고 선포하는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이 짧은 탄생게 속에는 불교의 정수가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天上天下 唯我獨尊”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도다.

하늘 위 신들의 세계이건 하늘 아래 중생들의 세상이건 할 것 없이 이 모든 세상을 통틀어 오직 나만이 존귀하다 하였습니다. 깨달은 눈으로 보면 나 아닌 것은 먼지 하나라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커다란 나무에 무수히 많은 잎사귀가 달려 있다고 해서 제각각의 잎사귀가 별개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 하나의 나무에 달린 잎사귀들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가 제각각 서로 다르다고 해서 별개의 존재가 아닙니다. 아무리 잎사귀가 많아도 나무는 한 몸이듯, 우리 역시 한 몸입니다.

내가 곧 당신이고, 그대가 곧 나입니다. 내가 곧 우리 모두이고 우리 모두가 곧 나입니다. 인간이 곧 자연이고 자연이 곧 인간입니다. 한 톨 먼지 속에 온 우주가 있고, 한 찰나 생각 속에 억겁의 세월이 있습니다. 일체가 어떤 비교도 분별도 없이 오롯하게 하나입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나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누가 더 잘나고, 더 똑똑하고 더 착한지 분별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존귀하고도 또 존귀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내가 부모인데…’ 하는 생각에 자식이 내 뜻대로 하기를 바라고 또 강요합니다. ‘내가 손님인데…’ 하는 생각에 직원의 불친절에 화부터 납니다. 내가 옳다는 생각에 다른 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내 생각과 다르면 어떻게든 내 생각을 관철시키려고 합니다. 그 결과 우리들은 서로 조금만 달라도 서운해하고, 화내고, 결국은 얼굴 붉히며 싸우기도 합니다. 고슴도치처럼 모두가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가시를 바짝 세우고 있습니다. 심지어 요즘은 서로 부딪히는 것도 번거롭게 여겨서 그저 법대로 하자고 합니다. 조금만 서로 어긋나도 법을 들이댑니다. 가까운 이웃 간에도, 심지어 나랏일 하는 분들도 직접 만나서 대화하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들 각자는 더욱더 날카롭고 단단한 갑옷으로 무장한 채, 감옥과도 같은 자기만의 방안에서 나오려 하지 않습니다.

“삼계개고 아당안지 三界皆苦 我當安之”
삼계가 괴로움에 빠져 있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

우리들 인생사 괴로움은 바로 여기서 시작합니다. 내가 만든 ‘나’라는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는 이 현실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그러나 이 감옥은 실제로는 있지도 않은 감옥입니다. 깨달은 마음으로 만나는 세상은 오직 한몸일 뿐입니다. 너의 고통과 나의 고통이 따로 있지 않고, 나의 즐거움과 너의 즐거움이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고통이 곧 나의 고통이요 나의 괴로움이 곧 일체 중생의 괴로움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내 마땅히 이를 편안하게 하리라.” 하신 것입니다. 내가 옳다는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봅시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봅시다. 내가 부모인데, 내가 손님인데, 내가 선배인데 하는 생각은 잠시 내려 놓고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입시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야 상대방의 생각이 들어오고, 상대방의 감정이 느껴집니다. 그래야 우리 모두는 애초부터 하나의 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불교는 지혜를 밝혀서 자비로써 세상을 아름답게 합니다. 불법을 실천하는 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나다 너다 하는 분별을 버리고, ‘나’라는 놈은 잠깐 내려놓는 것이 지혜를 밝히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귀 기울이는 것이 자비로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뜻을 실천하는 길입니다.

아기부처님의 탄생을 마냥 기뻐하기 전에, 그동안 내가 얼마나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었는지 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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