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속이야기

조막손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 있었던 일이다.

그때 그 성에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재물과 보물을 지닌 한 장자가 있었다. 그는 좋은 집안의 딸을 선택해 아내로 맞이하여 온갖 음악을 즐기면서 살았다. 그러다 그의 아내가 임신하여 열 달 만에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그 아기는 손가락이 없어 뭉툭한 조막손이었다. 부모는 온전한 신체로 태어나지 못한 아이를 품에 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때였다. 갓 태어난 아기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부모를 바라보며 말했다.

“온전한 손을 가지고 태어나기가 어렵지, 손 없이 태어나는 건 쉽고 흔한 일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의 위로에 부모는 깜짝 놀랐다. 부모는 아이에게 ‘조막손’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덕분인지, 소년이 된 조막손은 신체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성품이 유순하고 밝았으며, 또래보다 유난히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말솜씨가 뛰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소년이 된 조막손이 친구들과 어울려 여기저기 뛰어놀다가 기원정사까지 가게 되었다. 멀리 나무 아래마다 스님들이 고요한 침묵 속에서 깊은 사색에 잠겨 있었다. 천방지축 깔깔대며 장난치던 조막손과 친구들은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졌다. 아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살금살금 고양이걸음으로 조용히 숲으로 들어섰다. 그러다 나무 아래 앉아계신 한 분을 뵙게 되었다. 너무나 아름답고 평화로운 그 얼굴은 백천 개의 태양이 뜬 것처럼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저분이 소문으로만 듣던 부처님이구나!”

조막손의 마음에 알 수 없는 희열이 샘솟았다. 조막손은 자신도 모르게 부처님께 다가가 발아래 엎드려 공손히 절을 올렸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앉아 공손히 합장하였다.

“자네는 누구인가?”

선정에서 깨어난 부처님께서 푸른 연꽃처럼 맑은 눈빛으로 바라보셨다.

“저는 사위성 장자의 아들 조막손입니다.”

조막손은 성자의 선정禪定을 방해한 것은 아닌가 싶어 죄송스러웠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미소를 띠고 말씀하셨다.

“편히 앉아라. 아직 어린데 숲속 수행자를 존중하고 예배할 줄 아니, 참 기특하구나.”

부처님께서는 조막손을 칭찬하고, 그를 위해 여러 가지 가르침을 설해주셨다. 봄볕처럼 따스한 부처님 음성이 조막손의 가슴에 스며들었다. 조막손은 넘치는 기쁨을 안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 저도 저 스님들처럼 출가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싶습니다.”

“나는 소년의 출가를 허락하지 않는다. 꼭 출가하고 싶다면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오너라.”

조막손은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께 출가할 뜻을 밝혔다. 부모님은 아들의 뜻을 꺾을 수 없었다. 함께 부처님께 찾아가 아들의 출가를 원하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 이 사실을 목격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 조막손 비구는 전생에 무슨 업을 지었기에 뭉툭한 조막손으로 태어난 것입니까? 또 무슨 인연으로 이제 세존을 만나 깨달음을 얻게 된 것입니까?”

이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자세히 들어라. 내가 이제 너희들을 위해 자세히 분별하여 해설하리라.

이 현겁賢劫에 가섭 부처님께서 바라나국에 출현하신 적이 있었다. 그때 사이좋게 지내던 두 비구가 있었다. 한 사람은 깨달음을 성취한 아라한이었고, 또 한 사람은 아직 깨달음은 성취하지 못했으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능숙하게 설명할 줄 아는 법사法師였다.

사람들은 서로 앞다퉈 아라한 비구를 공양에 초청하였다. 그럴 때마다 아라한 비구는 혼자 가지 않고 항상 법사 비구와 함께 시주의 집으로 가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늘 자신을 챙겨주는 것이 고마웠던 법사 비구는 은혜를 갚겠다는 생각에 아라한 비구의 발우를 씻어주기도 하고, 그가 사용할 물을 길어다 주기도 하고, 그가 머무는 방과 경행經行하는 숲길을 깨끗이 청소해 주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법사 비구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한 신자가 찾아와 아라한 비구를 초대하였다. 아라한 비구는 어쩔 수 없어 다른 비구와 함께 시주 집으로 갔다. 얼마 후 숲으로 돌아온 법사 비구가 이 사실을 알고, 분노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내가 항상 네 발우를 씻어주고, 물을 길어다 주고, 방 청소까지 해주었는데, 너는 그 잠깐의 시간도 기다려주지 못한단 말인가? 저런 놈을 다시 도와준다면 내 손모가지를 잘라 버리리라.’

이렇게 말하고 훌쩍 떠나버렸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알고 싶은가? 그 법사 비구가 바로 저 조막손 비구이니라. 아라한 비구를 원망하며 저주를 퍼부었던 업연으로 그는 500번의 생애 동안 손 없이 태어났다. 하지만 한때나마 성인聖人인 아라한 비구를 존경하며 그를 뒷바라지한 공덕으로 이제 또 나를 만나 출가하고 도를 얻게 된 것이니라.”

부처님의 제자들은 조막손 비구의 전생 이야기를 듣고 다들 생각도 말도 행동도 스스로 삼가고 단속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 사이에 서운한 일이 생기는 건 한편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섭섭함 다음에 일으키는 행동들까지 당연시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바보스러운 짓이다. 왜냐하면, 뜻밖의 재앙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리 섭섭해도 험한 말은 삼가자. 한껏 퍼부은 저주는 깊은 산 메아리처럼 돌고 돌아 언젠가 내 귓가를 소란스럽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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