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묵당 편지

해질녘 오층석탑과 칠층석탑

오백전 옆 두 개의 석탑에 오후의 햇살이 길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저들은 저곳에서 얼마나 많은 석양을 보았을까?
그 각각의 일몰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저기에 붙박혀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것을 지켜보았을까?’
말없이 서 있는 석탑을 보며 생각합니다.

증심사는 9세기 중엽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어 1,20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오층석탑의 창건시기는 고려시대, 칠층석탑은 조선시대라 합니다.
그렇다면 저들은 증심사를 터전 삼아 살다 간 사람들을
몇 백 년 넘게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저들 입장에서 증심사를 살다간 숱한 스님들은
그저 잠시 스쳐가는 객에 불과하였을 것입니다.
저들의 단단한 기억 속엔 잠시 묵었다 간 객들에 대한 평판이
오롯하게 새겨져 있을 것입니다.
내가 저들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들이 나를 보고 있습니다.

‘과연 나의 수행평가는 몇 점이나 될까?’
봄날 오후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풍경 속에 서늘한 경책이 담겨 있습니다.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오월의 햇살은 우리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뜻은 과연 무엇인가?”

Related Article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Back to top bu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