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묵당 편지
감사합니다
가끔 휴가 중인 스님을 대신하여 저녁 예불을 보곤 합니다. 일종의 스페어 부전 스님인 셈입니다. 저녁 예불을 마치고 나오는 바로 그 시각, 어떤 이는 시끄러운 지하철에 피곤에 지친 심신을 내맡기고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이는 꽉 막힌 도로 위 차 안에서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괜한 상념에 빠지기도 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내키지 않는 모임 자리에서 불편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해질 무렵 인적 끊긴 조용한 산사에서 혼자 예불을 올립니다. 예불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천년이 넘은 삼층석탑에 인사드리고, 한적한 대웅전 마당을 가로 질러 방으로 돌아갑니다. 복에 겨운 순간입니다. 이 복을 어떻게든 갚아야만 할 것 같은 사명감마저 들기도 합니다.
원래 저는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이 아니었는데, 세월은 어느새 저를 이렇듯 긍정적인 인간으로 변모시키고 있습니다. 그동안 살아온 세월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 세월 속에서 나와 함께 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은 지금 이 순간 저와 함께 하는 모든 이들의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