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묵당 편지

초하의 증심사

저는 지금 증심사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만, 사실 증심사 어디에도 증심사는 없습니다. 손가락으로 정확하게 가리킬 수 있는 그 무엇.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고, 두드리거나 흔들면 소리도 나는 그 무엇으로서의 ‘증심사’는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기와, 나무, 흙, 꽃, 법당건물 같은 것들 뿐입니다. 이렇게 따지자면 ‘삼성’같은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루이비통’같은 명품 브랜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증심사’는 ‘증심사’를 알고,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 예불하고 기도하는 스님들의 마음 속에, 후원에서 그리고 종무소에서 열심히 일하는 봉사자분들의 마음 속에, 증심사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하루하루 살아가는 증심사 직원들의 마음속에, 매달 받아보는 소식지에서 증심사의 근황을 관심읽게 찾아 보는 신도님들의 마음 속에, ‘증심사’가 있습니다.

각자의 마음 속 증심사가 모여 우리의 ‘증심사’가 존재합니다. ‘증심사’는 무등산 자락을 천이백 년 동안 지켜왔습니다. 동시에 ‘증심사’는 천이백 년 동안 광주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숨쉬며 살아왔습니다.
오백전과 비로전에서 기도하는 스님들의 정성과 땀 흘려 봉사하시는 봉사자 분들의 헌신과 열심히 근무하는 직원들의 근면함과 소식지를 기다리는 신도님들의 관심으로 ‘증심사’는 날로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햇살이 눈부신 초여름입니다. 여러분 마음 속의 ‘증심사’는 안녕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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