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절우리신도

무더위, 기도로 날린다

자재행 보살

염천, 찜통, 가마솥, 삼복…
모두가 요즘 무더위를 표현하는 수식어이다.

더워도 무지 덥다. 이 더위에 전국의 사찰에서는 기도가 한창이다. 유주무주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천도재, 백중기도이다. 증심사도 법당마다 백중기도로 여념이 없다. 7월 끝자락에 무등산에 올랐다. 대웅전에서 기도를 마치고 나오는 윤규모(법명 자재행. 72)보살을 바라보니 얼굴이 활짝 핀 모란 같다.

“법당에서 기도하다 문득 고개를 들면 가끔 부처님이 웃고 계세요. 그럴 때면 제 마음도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 몰라요. 그 마음이 부처님 마음인가 봐요.”


올해도 자재행 보살은 백중기도에 동참하고 있다.

기도발원은 먼저 가신 남편과 조상님의 극락왕생이다. 마음을 집중하기 위해 49일간 하루에 지장보살 정근 1만념을 하고 있다. 정근뿐 아니라 수시로 <지장경> <관음경>을 독경하고 ‘관음보살 42수 진언’ 정진도 게으르지 않고 있다. 이처럼 자재행보살의 하루는 기도로 일관하고 있다.

자재행 보살은 염주대신 염불 횟수를 알리는
손가락 계수기를 가지고 다니며 기도정진하고있다.

“먼저 가신 분들이 편안해야 살아있는 이들이 편안하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자손들 또한 편안해지죠. 너 나 없이 모두가 편안하면 그것이 부처님세상 아닐까요…”

자재행 보살은 평소에도 어려운 이들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물질이 있으면 나눠야 후련하다. 줄 것이 없으면 ‘편안하기’를 축원하며 염불공양을 한다.

자재행 보살이 절을 찾아 본격적으로 기도정진하는 불자가 된 것은 결혼을 하면서부터이다. 해남에서 광주로 유학한 학창시절, 타종교를 신앙하기도 했다. 결혼한 시댁은 불교집안이었다. 시어머니를 따라 절에 다녔다.

30여년전, 남편이 먼저 세속의 인연을 마쳤다. 힘든 시기였다. 광주로 살림집을 옮기고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부처님을 찾았다. 택시를 타고 절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증심사 부처님을 뵙고 나니 서서히 자신은 물론 주위가 보였다. 증심사를 찾아 기도하면서 2남 2녀의 자녀들도 큰 어려움 없이 제 갈 길을 찾아갔다. 모두가 잘 성장해 주어 고마울 따름이다.

“처음 증심사에 왔을 때나 지금이나 부처님만 뵈면 그냥 좋아요. 하루는 주지스님이 법당의 부처님만 부처님이 아니라고 해요. 가족은 물론 이웃 모두가 부처님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가 부처님입니다”

자재행 보살은 법당기도를 마치면 곧장 후원으로 달려간다. 살아있는 부처님들을 위한 공양을 준비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서이다. 법회나 행사가 있으면 준비하는데 손을 거든다. 젊어서는 합창단원으로 활동했다. 부처님 음성공양을 위해 찾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갔다.

자재행 보살은 요즘들어 사찰순례를 통해 불교를 새롭게 만나고 있다. 불교방송 사찰 순례단과 함께 3년간 108사찰을 참배했다.

“나이가 들다보니 책보다는 사찰순례가 부처님 가르침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어 좋아요. 무엇보다 그 절에 살았던 스님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어 더욱 즐겁습니다.”

증심사에서 매달 떠나는 ‘길따라 절따라’ 홍보에 열정적인 자재행 보살에게서 알 수 없는 기운이 풍긴다. 곱게 나이 들고 있다는 에너지이다. 기도를 마치고 법당을 나서는 자재행보살에게서 풍겼던 모란꽃. 그것은 이웃을 부처님으로 여기며 공양하듯 기도하는 자재행 보살의 아우라(Aura. 인체로부터 발산되는 영혼적인 에너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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