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법문특집

무등산 산신재를 봉행하며

며칠 전 화순 만연산에 올랐습니다. 만연산 정상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니, 무등산이 시야를 가득 채우며 장엄하게 서있었습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무등산을 향해 합장하고 머리 숙여 절하였습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바로 저 무등산이 우리 절 증심사를 천년이 넘도록 품어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저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이었습니다. 전국의 산사에서는 매일 새벽마다 부처님 전에 이렇게 기도합니다.

산문도량 정숙하여 근심걱정 끊어지고
도량내의 대소재앙 길이길이 소멸되며
토지천룡 신장님들 삼보님을 호지하고
산신국사 호법신은 상서정기 드높이네


그동안 숱한 화마와 천재지변에도 불구하고 증심사는 광주를 대표하는 사찰로서 지금의 이 자리를 굳건하게 지켜왔습니다. 무등산의 산신님을 비롯하여 이 도량을 옹호하는 신장님들께서는 천년이라는 장구한 세월동안 온갖 재앙으로부터 천년기도도량 증심사를 지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천년 만년 변함없이 이 도량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저희들의 감사와 당부의 마음을 담아, 조촐한 공양물을 준비하여 무등산 산신재를 봉행합니다. 일찍이 우리 선조들은 “조왕신은 집안을 지키시고, 산신님은 집 밖을 지키신다”라고 믿었습니다. 산신님이 항상 우리를 든든하게 보살피시니 집 밖에서 이루어지는 온갖 일들은 열심히 노력하기만 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요즘으로 치자면 학업자는 일취월장하고, 사업자는 재수대통하며, 직업자는 수분성취하고, 운전자는 무사고 운전하기를 바라는 여러 일들이 우리가 잘나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와 세상의 이치를 잘 따랐기 때문으로 믿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실로 겸손하고도 지혜로운
마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산신님이 ‘우리를 보살펴 주신다’함은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한 오늘날, 오히려 우리들은 잘되면 내가 잘난 탓이요, 못되면 남과 세상을 탓합니다. 인연법을 통찰하는 지혜에는 눈이 멀었습니다. 우리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온갖 자연재해 그리고 기후위기는 결국 인간들이 교만하고 무지한 탓입니다. 과거 선조들의 자연을 향한 경외심을 미신이라 치부해버린 탓입니다. 그 결과, 현대 인류는
스스로 자초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자연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겸양의 자세와 슬기로움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사 온갖 고통과 불행은 모두 우리들이 교만하고 지혜롭지 못한 탓입니다. 모든 길하고 행복한 일들은 자연과 더불어 온 우주가 우리를 잘 돌보고 보살펴 주기에 가능한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선조들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자연을 사랑하자”는 인간중심적인 사고방식을 버려야 합니다. 대신 산신님을 정성껏 모시려는 마음가짐을 통해, 겸손하고 진지했던 선조들의 삶의 태도를 배워야 합니다.

무등산은 빛고을 광주의 진산입니다. 빛고을 광주라는 이름에서 ‘광’은 무등광 부처님의 ‘광’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무등광 부처님은 아미타 부처님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리고 무등산의 무등은 바로 무등광 부처님의 무등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 이 땅의 선조들은 무등산에 아미타 부처님이
주석하고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아미타 부처님의 신령스런 빛이 두루 퍼지는 이 땅이야말로 서방정토 극락세계라 믿어 그 이름을 광주라 하였습니다.

80년의 비극과 지난했던 항쟁의 역사도 무등산은 모두 지켜보았습니다. 지난 20세기 광주의 역사는 진정한 극락정토를 지켜내기 위한 우리들의 노력이었습니다. 그러니 오늘의 이 산신재는 우리 손으로 우리 고장을
극락정토로 이루겠다는 우리의 다짐이기도 합니다. 무등산은 아미타 부처님의 자비로운 광명으로 우리를 품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아미타 부처님을 모시는 마음으로 무등산을 우러러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빛고을 광주를 빛고을 광주답게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광주 어디서나 조금만 고개를 들면 장엄하게 서 있는 무등산을 볼 수 있습니다. 힘들고 지칠 때, 잠시 고개를 들어 무등산을 바라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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